brunch

마흔 즈음에

by 은수달


슬퍼요 슬퍼요 마흔이래요 마흔이래요

외로워요 괴로워요

이제는 기댈 곳도 없고 꿈도 없고 한숨만 느네요

아픈 곳도 많네요 술 먹기도 힘들어요


-연남동 덤앤더머 노래, <마흔 즈음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곡을 거쳐 요즘엔 <마흔 즈음에>라는 곡을 듣고 있다.


삼십 대 초반에 마흔 살 무렵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본 적 있다. 적어도 좀 더 멋지고 세련된 모습으로 변했을 거라 기대했고, 그때를 상상하며 열심히 달려갔다.


반평생쯤 살아보니 웬만한 일은 그러려니 넘기게 되고, 죽음이 두렵지 않으며, 지키고 싶은 것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여전히 가장 두려운 건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삼십 대 후반까지 난 투잡을 하면서도 좀처럼 지치지 않았고,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리게 보였으며, 적어도 세상이 내 편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덕분에 많은 일을 해냈고, 글동무를 만나 책도 냈으며, 전시회도 열었다.


그러나 호르몬의 장난까지 모른 척할 순 없었다. 갱년기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엄마를 보면서 '건강관리를 좀 더 열심히 해야지' 마음먹었고, 수시로 찾아오는 번아웃과 우울증을 극복하려 노력했다.



"나이 들수록 귀찮은 게 더 많아지는 것 같아. 가끔은 며칠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자고 싶어.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벨도 너무 피곤해."


부지런하기로 소문났지만, 알고 보면 게으른 성격이다. 게으름을 이기려고 뭐든 후딱 해치우고 휴식 시간을 가진다. 학창 시절에도 숙제 먼저 해놓고 마음 편하게 놀았고, 귀가 후엔 집안일부터 해버린다.


'나이는 못 속이나 보다. 주름살도 하나 둘 늘어가고, 평소보다 빨리 지치는 것 같아.'


타고난 체력이 강하지 못한 편이라 식단과 운동으로 극복하려 노력했고, 덕분에 또래보다 건강한 체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각종 스트레스는 적립금처럼 쌓여 원인 모를 질환으로 나타났다.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 편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날씨에 따라 기분이나 컨디션이 좌우되었다. 오늘처럼 비가 쏟아지는 날엔 진심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비도 오고 차도 많이 막히는데 일찍 가도 될까요?"


삼 남매의 아빠인 설계팀 차장님이 물었다. 날이 좋다며 반차 쓰고 혼자 훌쩍 떠나기도 하는 그는 평소엔 누구보다 성실한 직원이다.


마흔 즈음에 첫 에세이를 출간했고, 몸이 많이 안 좋았으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불혹의 나이에 마음껏 좌절하고, 일어서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제2의 전성기를 꿈꾸었다.



비문학에 관한 글을 쓰다가 자료가 필요해서 오랜만에 도서관을 찾았다. 자주 오다 보니 이젠 서가 위치를 외울 정도지만, 최근엔 발길이 뜸했다. 맞춤법과 심리학, 논리학에 관한 책들을 살펴보았다.


나이 들수록 신체적 기능은 떨어지겠지만, 마음의 나이만큼은 그대로이길 바라며 오늘도 난 독서와 글쓰기라는 벗을 가까이했다.






http://aladin.kr/p/0z9wg

http://aladin.kr/p/74lVJ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외할머니의 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