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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점검, MRI 검사

by 숭늉

2024. 7. 22 건강검진

2024. 7. 25 조직검사

2024. 7. 31 유방암 진단

2024. 8. 15 한국 도착

2024. 8. 16 고대 안암병원 유방외과 교수님 외래

2024. 8. 31 난자 채취

2024. 9. 10 다학제 (혈액종양내과 교수님과 첫 만남)

2024. 9. 12 케모포트 시술 후 첫 TCHP 항암

2024. 10. 4 선항암 TCHP 2차

2024. 10. 24 선항암 TCHP 3차

2024. 11. 8 중간점검 MRI

2024. 11. 13 선항암 TCHP 4차

삼중양성 타입에서 선항암을 하는 경우 3차가 끝나고 나면 중간 점검 MRI를 한다. 항암제가 얼마나 잘 듣고 있나 확인하는 절차인데, 만약에 종양이 기존보다 더 커졌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수술을 당겨서 먼저 진행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온몸을 휘젓고 다니는 항암제들로 인해 겪는 부작용이 어마어마한데, 그게 효과가 있는지 확인한다는 건 정말 여러모로 긴장되는 일이다. 항암제 투여를 하는 매 차수마다 손으로 만져봤을 때 조금씩 줄어든다고 느끼긴 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 종양이 유두 바로 뒤에 위치했기 때문에 내가 만지는 것이 멍울인지 종양인지 완전히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교수님이 좀 줄어든 것 같아요?라고 매 차수 물어보실 때마다 그렇긴 한데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해왔고, "많이 줄어들었네요"라고 확인해 주시는 건 늘 교수님의 몫이었다.

MRI는 영국에서 한 번, 한국에서 한 번 했고, 이번이 세 번째. 할 때마다 느끼지만 엎드려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20-30분가량 있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숨을 쉬는 것도 크게 쉬면 몸이 흔들릴 것만 같아 최대한 작게 쉬려 노력하고, 규칙적인 기계음에 혹시라도 잠이 들다 화들짝 깨면 그 순간 내가 혹시나 움직였을까 봐 걱정된다. 얼굴을 받쳐주는 받침대는 온 얼굴을 짓누르고 머릿속에는 온갖 잡생각이 떠돌아다닌다.

하지만 뭐, 사실 항암제 부작용 고통에 비할 바는 전혀 못된다.

무사히 MRI 촬영을 마치고 5일 후 4차 항암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외래에서 만난 교수님은 늘 그렇듯 밝은 얼굴로 맞이해주셨고, MRI 결과가 나왔다고 말씀해 주셨다.

"MRI 결과가 아주 좋아요. 항암제가 잘 듣는지, 암세포가 사라져서 MRI에서 더 이상 보이는 게 없어요."

"네? 그럼 아예 다 없어진 건가요?"

"네. 그렇다고 봐야죠."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좋아하면 혹시라도 부정탈까 봐, 정말 혹시라도 나중에 크게 실망하는 일이 생길까 봐 마냥 좋아할 수도 없었다. 아직 수술대에서 까본 것도 아니고, 모두가 염원하는 완전관해 판정을 받은 것도 아직 아니었다.

이어서 교수님은 사진을 보여주셨고, 모니터 좌우로 띄운 전후 사진에는 아주 확연한 차이가 보였다. 기존 MRI에서는 아주 하얗게 덩어리진 암세포가 있던 부분이, 이번 MRI 사진에서는 텅 빈 검은색으로 채워져있었다. 얼떨떨한 심정으로 교수님께 정말 다 없어진 거냐고 재차 물었고,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점차 작아지던 그 느낌이, 마치 아예 사라진 듯한 그 감촉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아직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냥 일단 약이 잘 듣는다는 것이니 그렇게만 알고 있으려고 한다. 기쁨은 나중에, 수술이 다 끝나고 완전관해 판정을 받으면 그때 온전히 누리는 걸로 해야겠다.

그래도 기념으로 저 드라마틱한 변화를 사진으로라도 한 장 갖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교수님께 사진 찍어도 되냐고 여쭤보았는데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대신 영상 자료 요청해서 가져가면 된다고 하셨다.)

아무튼 오랜만에 아주 홀가분하고, 기쁘고, 마음이 가볍다. 지금까지의 고생이 보상받는 기분이다.

물론 아직 방심하기엔 이르고, 앞으로 헤쳐나가야할 길도 멀다. 하지만 앞으로 가야할 여정에 있어 나에게 크나큰 힘을 준다. 이제부터 겪어야 할 4차, 5차, 6차 항암과 부작용, 수술, 혹시 모를 방사선 치료, 최소 9개월에 걸친 표적치료, 타목시펜 복용까지. 너무나 길고 긴 터널이 아직 앞에 있다. 그래도 난 해낼 것이고, 건강하게 재발 없이 잘 살아갈 것이다. 약이 잘 듣는다는 것, 암환자에게 그것 말고 더 바랄게 무엇이 있겠는가.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오전에 외래가 잡히면서 항암은 자연스레 오후로 잡혔다 항상 항암 날마다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병원가면 반나절만 있어도 진이 다 빠졌는데, 오늘은 오전의 외래, 오후의 항암으로 하루 종일 병원에 있는데도 피곤하긴 하지만 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 마음먹기 나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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