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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부작용과 쉐이빙

빡빡이 머리 시작!

by 숭늉

(연재 브런치북으로 재발행합니다)


TCHP 선항암은 첫 항암에 용량을 두 배로 맞기 때문에 부작용도 이후 차수에 비해 심한 편이다.


더군다나 첫 일주일 정도는 케모포트를 심은 자리가 불편해서 고개를 돌리기가 힘들고 포트를 심은 오른쪽 팔을 들어올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적응되고 나자 금세 나아졌다.


1일차

아침에 일어나니 손이 부어있었다. 몸에 액체를 때려 넣다 보니 몸이 땡땡 부어서 그런지 몸무게가 전날 대비 3키로가 늘어있다. 복수가 차는 느낌.



2일차

속이 조금 울렁거린다. 변비가 조금 생겨서 마그밀 복용. 다리에 부종이 생겨 걷기 힘들다. 혈압을 쟀는데 92-42. 말도 안 되는 저혈압이 나왔다. 평소 혈압은 보통 100-80 나오는데...



3일차

다리에 근육통이랑 관절통이 심했는데 타이레놀 먹고 조금 나아졌다. 변비도 조금 해결되었지만 배가 계속 너무 불러있어서 여전히 힘들다.



4일차

밤새 열 번은 더 잠에서 깼다. 소화가 안돼서 소화제와 변비약을 먹고 자서 그런가 화장실을 들락날락. 배가 너무너무 아파서 밤새 괴로웠다. 그에 맞춰서 몸무게는 쭉쭉 빠지기 시작.


낮에 피곤해서 소파에서 자다가 일어나다가 기립성저혈압으로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잠깐이지만 정신을 잃었고, 온 가족이 보고 있어서 다들 너무나 놀랐다. 너무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는데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그리고 코피가 나기 시작했다.



5일차

코피가 또 났다. 가슴이 조금 답답하다. 근육통은 훨씬 나아졌다. 온 몸에 힘이 없다. 식도가 아프고 목이 부어있다.



6일차

변비에서 설사로 전환되었다. 몸무게가 더 빠진다. 여기서 더 빠질게 어딨다고... 6일만에 4키로가 빠졌다. 첫날 부어서 생긴 3키로를 더하면 7키로가 빠짐. 먹질 못해서 기력이 없다. 이러다가 못먹어서 쓰러질 것 같아서 뉴케어랑 캔서코치를 주문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찌르는 듯 아프다. 숨쉬기가 불편.



7일차

컨디션이 약간 나아졌다. 코피는 계속 난다. 그래도 식도는 좀 나아져서 뭘 먹기에는 좀 낫다.



8일차

세상에나 컨디션 최고! 어떻게 이렇게 하루아침에 변하는지.


그런데 웬걸, 미각을 상식했다. 뭘 먹어도 쓴맛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며칠전부터 혀가 점점 빨개지고 붓기 시작하더니 이젠 검붉기까지 하다.


음식을 꾸역꾸역 입안에 밀어 넣는다. 무슨 맛인지 아는데 머릿속의 맛과 내 입속의 맛이 다르다. 밥 먹는 시간이 돌아오는 게 무섭다. 입안이 까끌까끌 모래알을 물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속이 아픈 것보다는 낫다. 억지로라도 입안에 넣고 삼키면 소화시킬 수 있으니까. 영양 보충은 적어도 할 수 있겠지. 몸무게가 약간 늘기 시작했다. 야호!



9일차

미각이 돌아왔다!!! 하루 만에!! 너무나 다행. 먹는 즐거움이 이런거라니.

여전히 코피는 펑펑



10일차

며칠 전 모낭염이 나기 시작했는데 점점 심해진다. 혀는 아직 빨갛게 부어있고 모래 씹는 맛은 아주 약간 덜하다. 몸무게는 조금 더 회복되었다. 조금만 더 힘내자! 둘레길도 올랐다. 가는 길에 코피를 쏟긴 했지만 등산할 정도로 돌아온 컨디션이 너무나 감사할 따름.



11일차

항암 후 첫 외래. 피검사하고 혈압 쟀는데 모두 정상! 교수님이 만져보시더니 좀 작아지고 말랑말랑해진 것 같다고 하셨다. 약이 잘 듣는가 보다. 증상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소화제와 마그밀은 깔아놓고 먹으라고 하셨다. 앞으로 중간 체크업은 안와도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아마 큰 문제가 없어 보이고 피검사 수치도 좋고 내 컨디션이 오늘 너무 좋기 때문 아닐까. 이 밖에도 림프 세침검사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기쁜 소식!!


집에 와서 조카랑 산책하다가 울길래 잘 싸안아서 보듬고 돌아오는데 내 품 안에서 잠이 들었다. 폭삭 안겨 잠든 아기의 무게가 너무 귀여웠다. 덕분에 나도 피곤해서 골골대다가 꿀잠. 이 정도면 완벽한 하루 아닌가! ☀️



12일차

하루 종일 피곤하다.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해서 나가서 30분 뛰고 왔다.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숭덩숭덩. 브라질리언 왁싱도 필요가 없다니 럭키자나



13일차

요즘 하는 게 없어서 그런지 시간이 잘 안 간다. 이렇다 할 증상도 더 이상 없다.



14일차

쉐이빙.


세포독성 항암을 하기로 결정이 되었다면 쉐이빙은 언젠가는 지나쳐야 할 관문이다. 삼중양성에게는 항암은 피할 수 없는 치료 과정이기 때문에 머리가 빠진다는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초반부터 조금씩 해왔던 것 같다.



보통 14일차에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래서 항암 환우를 위해 무료 쉐이빙을 해주는 힐링햇에 날짜 맞춰서 예약을 해두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는 한참을 고민했다. 머리가 생각보다 안 빠지는데? 이 정도면 좀 더 기다렸다가 했어야 하나? 내가 너무 섣불리 일찍 쉐이빙 예약을 잡은 건가? 지금이라도 취소해야 하나? 거울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마음을 다잡고서 - 그래, 예약한 김에 가야지. 마음먹었잖아, 며칠 더 머리 있이 산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어 - 라는 마음으로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하지만 머리를 감으며 지금까지 빠졌던 머리랑은 차원이 다르게 빠지는 머리들을 보고는 아.. 14일차부터 본격적으로 빠진다던 게 정말 사실이구나. 나에게도 기적은 없구나, 했다. 머리가 너무 빠져서 손으로 빗는 것조차 두려웠고 이대로 가다간 쉐이빙 할 머리가 남아있질 않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머리를 말렸더니 말리는 중에도 한참을 숭덩숭덩 빠지는 머리. 다른 머리들과 엉겨서 붙어있는 머리들을 슥슥 뽑아내다 보니 머리가 완전히 엉켜버리고 말았다. 아.. 긴 머리는 엉키면서 빠진다더니 그게 이거구나. 머리를 풀고 가는 건 포기해야겠다. 엉켜버린 머리를 동여매고 질끈 묶고는 언니와 함께 잠실로 향했다.



힐링햇에서 가발을 좀 구경한 다음에 쉐이빙을 시작했다. 괜스레 마음이 두근두근 긴장되어서 물도 한잔 마시면서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고, 마지막 사진을 몇 장 찍은 후에 쉐이빙을 했다. 영상은 남기지 못했지만 끝나고 나서 본 나는 너무나 늠름하고 잘생긴 민머리가 되어있었다. 펑펑 울면 어떡하지 걱정하면서 갔는데 생각보다 충격이 크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거울 속의 까까머리 내 모습이 나름 귀여워 보였고 씩씩하고 멋있어 보여서 기분이 좀 좋아졌고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나 민머리도 잘 어울리는데? 내 이목구비가 더 사는구만 하하 하면서 기분 좋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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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이빙 전후 샷 - 엉켜버린 머리와 까까머리




SE-f0d39208-9ddf-4868-be60-1ee5827ae7dc.jpg?type=w966 처참히 잘려 나간 머리. 안녕 잘 가!


이제부터 시작이다. 마음의 무거운 숙제였던 쉐이빙을 끝내서 한결 후련하다. 앞으로 잘 해보자!




15일차

아무런 증상이 없다.



16일차

갑자기 시간이 훅훅 간다. 다음 항암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17, 18, 19일차

아무 증상이 없다. 컨디션은 항암 전과 같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




20일차

크게 아픈 곳도 없고 하는 것도 없다. 좀 더 의욕적으로 살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운동은 계속하려고 노력한다.



21일차

마지막 자유의 날.



이번 차수 요약:

가장 힘들었던 건 소화불량. 불편했던 건 코피. 놀랐던 건 저혈압으로 쓰러진 사건.

가장 좋았던 건 암세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

몸 사리느라 운동 외엔 집 밖에 잘 안 나가고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다음 차수때는 좀 더 외부활동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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