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I 결과를 들으면서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 상담했던 것이 8월 26일. 그리고 다학제는 매주 화요일에 열린다고 했기에 그동안의 빠른 일 처리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당연히 9월 3일을 예상하였으나 안타깝게도 가장 빠른 예약은 9월 10일이라고 했다. 중간중간 전화해서 혹시라도 빈자리가 났는지 문의했지만 아무래도 다학제까지 잡히고 취소하는 경우는 드물어서인지 자리가 쉽게 나지 않았다. 그래서 무려 2주나 기다린 후에야 다학제를 할 수 있었다. 다학제를 해야만 앞으로의 치료 방향이 결정되어서 항암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영국에서 이미 의사와 많은 상담을 했기에 표준치료에 대해 잘 알고 있기는 했지만 사실상 혈액종양내과 교수님을 만난 건 다학제 날이 처음이었다.
혈종과 교수님은 MRI 결과 상 2cm 가 넘는 종양 크기 때문에 선항암을 하자고 하셨고, 이는 이미 유방외과 교수님과 이야기가 되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약은 AC + THP 가 아닌 TCHP 6회를 한다고 하셨는데 이는 AC 약제는 심장독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고 TC로도 충분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AC에 T까지 한다니.. 기간으로 보나 그 독한 약제들을 종류별로 쓴다는 것으로 보나 - 결과적으로 굉장히 잘한 선택이고 TCHP로 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학제에는 총 6명의 교수님이 참석하셨고, 각자 전문 분야의 의견을 내어주셨다. 그중 하나는 림프가 살짝 부어 보인다는 것이었는데 정확한 것은 감시 림프절 검사를 통해 알아봐야겠지만 일단 림프 조직 검사를 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방사선과 교수님께서는 림프 검사 결과에 따라서 기수가 올라갈 수도 있고 그럴 경우 전절제를 하더라도 수술 후 방사선 치료가 추가된다고 하셨다. 물론 그 이야기를 들은 뒤로 나는 조직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또다시 걱정인형이 되어버렸다.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다학제는 아주 중요한 내용들로 꽉 차서 알차지만 또 아주 신속하게 진행이 되었다. 뒤이어 빠른 질문 답변 시간을 마지막으로 나는 "당장 오늘이라도 항암 시작할 수 있어요!"라고 하였고 교수님은 웃으시며 "오늘은 아마 병실이 안될 테고 내일 입원할 수 있게 잡아드릴게요."라고 하셨다.
그렇게 9월 11일 입원을 하여 다음 날인 12일, 첫 항암을 시작하였다.
다학제 날 항암 일자를 잡는다던데 혹시라도 늦어지면 어떡하지? 나는 이미 너무 많이 기다렸는데. 다음 주가 추석인데 혹시 추석보다 늦어지면 9월 말이나 되어야 시작하는 거 아닌가? 그럼 너무 늦는데...
다학제 전에 나를 지배하던 온갖 걱정과는 달리 첫 항암 일정은 순조롭게 잡혔고, 바로 다음날 입원을 할 수 있었다. 막상 입원을 하고 나니 떨려오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도 속 시원한 마음으로 두려움 반 설렘 반 (그토록 기다려왔던 항암! 이제야 암세포 놈들을 무찌를 수 있다!! 에서 오는 설렘) 이런저런 검사를 하면서 입원 첫날밤을 보냈고, 그다음 날은 아침부터 밤까지 케모포트 시술, 심전도 측정, 심장초음파, 클립 삽입, 혈액검사 등등 쉴 새 없이 불려 다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케모포트 시술은 6차 항암을 앞둔 데다가 혈관 잡는 게 평소에도 쉽지 않을 때가 있는 나에게는 필수적인 절차였다. 쇄골 아래에 포트를 심어서 정맥주사를 바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부분마취만 하고 시술을 하다 보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 기분 나쁜 수술절차를 오롯이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통증은 없지만 장치를 쑤셔 넣을 때 느껴지는 압박감이라든지, 여러 소음들이라든지. 참고로 이 케모포트에서 오는 이물감은 약 2주 정도 지속되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시술 부위가 당기고 누르면 아프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저.. 내 몸 같다.)
케모포트 시술을 위한 정맥주사는 아직 포트가 없기 때문에 전날 밤 팔에 연결하게 되었는데 숙련되지 못한 간호사가 오셨는지 약 다섯 번가량을 혈관 잡기에 실패하고 결국 손등에 하게 되었다. 이때 덕지덕지 붙였던 테이프 자국은 3개월이 지난 지금도 내 팔에 남아있다. 항암 때문인지 착색이 잘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심장초음파는 약 30-40분 정도 걸렸는데 자꾸 "숨 들이쉬세요" "숨 참으세요" "내뱉으세요"를 정말 평온한 목소리로 과장 안 하고 백번 넘게 말씀하신다. 그래서 중간중간 잠에 빠진 건 비밀 �
클립은 항암제로 인해서 종양이 사라져버릴 수 있기 때문에 수술할 때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 삽입한다. 조직 검사했던 총 같은 기구를 쏴서 하게 되는데 암세포가 아주 단단하게 엉겨있어서 그런가 "아이고 이게 잘 안 들어가네"라고 하시면서 의사선생님께서 한참을 고생하셨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의 고통은 고스란히 나에게 와서 정말 너무너무 고통스럽고 아팠다.
이 모든 과정들을 거쳐 드디어 항암제 투여를 시작하게 된 시각은 오후 6시경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삼중양성으로 tchp 네 가지의 항암제를 투여하기로 되어있다. 오심 방지를 위한 약을 먹고, 처방된 타이레놀을 먹고, 식염수 두 팩을 맞고, 허셉틴, 퍼제타, 도세탁셀, 카보플라틴 순으로 약을 맞고 나니 밤 열두시가 꼬박 넘어서 지쳐 잠들었다.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입에 얼음을 물고 있었고, 그래서 중간에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부작용 때문에 약 넣어드릴게요"라면서 중간중간 간호사분께서 약을 추가적으로 놓아주셨는데 그 덕분이었는지 다행히도 항암 맞는 동안에는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화장실을 자주 가고 몸이 퉁퉁 부었을 뿐.
아침에 7시쯤인지 일어나서 밤 12시까지 하루 종일 시달렸던 하루가 드디어 끝이 났고, 중요한 일정도 다 끝이 났다.
2박 3일 입원이라고 했는데. 다음날 일어나서 오늘은 뭘 하나 했더니 간호사님께서
"오늘은 하실 거 없어요- 자유롭게 다니시다가 항암제 투여한 지 24시간 후에 면역수치 올리는 약 맞고 퇴원하시면 돼요. 어젯밤 12시에 끝나셨으니까... 오늘 밤 12시에 맞고 퇴원하시면 되겠네요."
"네..? 밤 12시요?? 저 퇴원하고 밤에 다시 오면 안 돼요?"
"그건 안되세요"
결국 하루 종일 병원에서 서성거리고 돌아다니다가 교수님께서 그래도 2시간 정도는 괜찮다고 하셔서.. 밤 10시쯤 주사 맞고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2박 3일의 고된 일정이 이제 다 끝났다.
그리고, 이제 시작이다. 이젠 내가 견디는 것만 남았다. 앞으로의 긴 싸움에서 내가 꼭 이기고 말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