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항암 vs 선수술
8월 12일
오전에 난자냉동을 위해 Fertility clinic 에 다녀왔고, 약 2주 치 주사를 한아름 받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클리닉에서는 혈액검사 결과를 전화로 알려줄테니 그 결과에 따라서 오후부터 주사를 맞으라고 설명해주었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암환자에 한해서 난자냉동 및 보관이 무료이다.
하지만 그 날 오후부터 한국에 돌아가야하나 하는 불안과 고민이 극대화되었다. 이 주사를 시작하는 순간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 - 영국에 남아서 혼자 항암치료를 받는 선택 - 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라도 어떤 프로세스라도 시작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주사를 맞지 않았다..
8월 13일
마음의 결심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 갈거면 당장 가야지, 오늘 저녁에 갈까? 한국가려면 조직검사 슬라이드를 가져오라던데 병원에 전화해봐야지. 병원에 소식을 전하자 G의 비서는 늘 그렇듯 친절했다.
그렇게 결정했구나. G 의 오늘 진료는 오전까지라서 끝났고 내일 만날 수 있어. 내일 오전 10시까지 병원으로 와. 그럼 이번 주에 심전도랑 초음파, Port 시술 예약되어있는건 취소할게. 그리고 조직검사 슬라이드는 우리 병원에는 없고 Charing Cross Hospital 에 가야 받을 수 있는데 내가 전화해둘게. 오늘 픽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얘기할거야. 오늘 갈 수 있지?
세상에 어쩜 이렇게 일을 잘하는지. 정말 너무너무 감사하게도 모든 것을 초스피드로 진행시켜주었고, 슬라이드도 문제 없이 픽업할 수 있었다. 만나는 사람 모두가 쾌유를 빌어주었으며 가족들과 함께 있는 선택은 정말 잘한거라고, 치료가 잘 되길 바란다고 따뜻하게 얘기해주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를 들을 때면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그리고는 드디어 비행기표도 구매 완료!
8월 14일
오전 G를 만나 상황 설명과 작별인사를 했고, 그 날 저녁 히드로에서 룸메이트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비행기에 탑승했다.
8월 15일
한국 시간 오후, 서울에 도착
8월 16일
그렇게 부랴부랴 한국에 들어온 후, 너무나 다행히도 여러 우연이 겹쳐 너무나 다행히도 귀국 바로 다음 날 유방외과 교수님을 만나뵐 수 있었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난 영국에서 진행할 생각으로 약도 받아오고 그랬는데. 많은 것이 너무나 빠른 시간에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에서 가져온 MRI가 안타깝게도 CD로 옮겨지는 중에 화질이 저하되어 (그리고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달라서 제대로 파일을 열 수가 없다고 했다.) 새로 MRI를 촬영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처음 진단 시에는 두 종양이 이어져서 2.5 cm로 판별되었던 것이, 현재 보이기로는 서로 떨어져있는 것으로 보여서 이런 경우 선항암이 아니라 수술을 먼저 해야한다고 하셨다.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내가 영국에서 들었던 선항암의 장점들 (암의 크기를 줄여서 수술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항암제가 잘 듣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을 놓치는 듯 했다. 내가 선항암을 고집하자 2cm가 기준이고 그 이하의 경우에 선항암은 불가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수술을 먼저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인데 왜 항암을 먼저 하고싶어하냐 라고 물으셨지만 나는 여전히 선항암이 답인것만 같았다.
다시 G와 J 에게 컨택을 했다. 한국 병원에서는 선수술을 제안하는데 여기에 대한 의견은 어떻냐 라고 물었다. 결국 J와는 비디오콜까지 하게되었다.
J: 너의 이메일을 받고 우리쪽 다학제에서 너의 케이스를 다시 한 번 검토했어. 그런데 우리의 의견은 이전과 같아 - 선항암을 할거야.
지금 돌이켜보면 감사하게도 여러 나라, 여러 의사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지만 그게 도리어 나에게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 같다. 어느 한 쪽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별로 표준치료가 아주 조금씩 달라서 생긴 문제였다. 내가 선택한 의사와 팀을 믿고 그 의견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한데, 나의 경우에는 그런 의사-환자 관계 형성이 영국 팀과 좀 더 긴 시간동안 단단해져왔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바뀌어버린 치료 플랜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결국 선택은 내 몫이었다. 선항암을 고집하고 싶으면 영국으로 돌아가야했고, 그게 아니면 그냥 한국의 팀을 믿고 수술부터 진행할 수도 있었다.
머리가 아파오던 중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에서 새로 찍은 MRI 상 두개의 종양이 이어진 것으로 보이고 이런 경우 2.5cm 가 맞으며 선항암 기준이 충족되기 때문에 선항암을 진행하자는 소식을 들었다. 큰 고민 하나가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이 모든 일과 동시에 나는 숙제를 하러 난임병원에 다니고 있었다. 사실 항암이고 뭐고, 나는 일단 난자냉동이 급선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