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젊은 유방암 환자의 숙제, 난자 동결

미래를 위한 투자

by 숭늉

유방암 치료 시 항암제 약물 등이 가임 능력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차후에 자녀계획이 있다면 난자 냉동을 가장 먼저 하게 되는데, 아직 미혼에 자녀에 대한 생각이 있는 나에게는 어찌 보면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초조한데 최소 2주라는 시간을 개런티 되지 않은 어떤 것에 쓴다는 것이 또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있어야 아이도 낳는 것 일 텐데 괜히 시간을 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들 정도.


더군다나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채취의 기회는 단 한 번. 이때 난자 개수가 10개가 나올지 20개가 나올지, 그 난자들이 나중에 다 살아남아 주어서 정말 임신과 출산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그저 확률 싸움이고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내 인생이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나는 치료 이후에도 나의 삶을 보란듯이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영국 GP를 통해 갔던 fertility clinic에서 한가득 받아왔던 고날에프펜과 메노퓨어, 가니렐릭스 주사들을 여기서도 쓸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고, 덕분에 약 값을 많이 아낄 수 있게 되었다. 한 번뿐인 기회이기 때문에 약을 꽤 고용량 (고날에프는 450씩 맞았다) 으로 주사했는데 아마 못해도 150만 원은 아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약 값은 20만 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보관료를 포함해서 총 330만 원가량 나왔다. (다행히도 서울시 난자동결 지원사업을 통해서 비용의 일부분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약 10일 가량 배에 주사를 놓고, 난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기 위해 초음파 검사를 여러 차례 진행하였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주사를 놓아야 하기 때문에 편의를 위해 집에서 스스로 주사를 놓게 되는데, 처음에는 내 배에 스스로 주사를 놓는다는게 무섭고 쉽지 않았지만 이마저도 익숙해지더라. 약 10일 후 마침내 난포 터트리는 주사를 맞았고 수면마취 하에 시술이 진행되었다.



며칠 후 병원에서 결과를 들을 수 있었는데, 다행히도 채취된 개수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숫자. 채취하는 모든 난자들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중 건강한 난자를 걸러내고, 얼리고 녹이는 과정에서 손실되는 난자가 또 발생하고, 그 중에서도 수정에 성공해서 착상까지 가서 임신에 출산까지 가려면 그 확률은 결코 높지 않다. 그래도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이후는 그저 운에 맡기는 수밖에.




내 배를 찔렀던 수많은 바늘들












keyword
이전 05화하루만에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