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속에서 내려야 했던 의사 결정들
진단받은 후 나는 유방암에 대해 닥치는 대로 공부를 했다. 영어와 한국어 넘나들며 온갖 유투브와 논문, 블로그, 기사 등을 읽어댔다. 내가 가장 빨리 답을 내려야 할 가장 큰 질문은 바로 이거였다.
"어디에서 치료를 받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영국에서 이대로 치료를 받을까?"
1. 보험
나는 한국에 보험이 없다. 그 흔한 실비보험 하나 없다. 이미 한국을 떠나 산 지 7년이 넘었고, 굳이 보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큰돈이 들어갈 정도로 병원 신세를 질 일도 잘 없기도 했고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보험이 있기 때문에 사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암 환자는 산정특례를 받을 수 있어 급여 의료비의 5%만 내면 된다. 하지만 내 암은 삼중양성으로 선항암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항암제 중에서는 비급여인 것들이 있었고, 이 경우에는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 전체 기간을 놓고 보면 몇천만 원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에 비해 영국에서는 누구나 NHS를 통해서 의료를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 악명 높은 대기시간이 있긴 하지만 영국 시골에 살 때는 오히려 의료 접근성이 더 좋았었고, 급하게 일분일초를 다투는 일이라면 빠르게 처리해 준다. 그리고 나는 회사에서 프라이빗 보험을 지원해 주는데, 그 덕분에 NHS를 통하지 않아도 프라이빗 보험을 받는 병원에서는 언제든 바로바로 긴 대기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 역시 전액 무료다.
2. 의료 파업
한국은 의료 파업에서 온 여파가 일 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중이었고, 응급실을 가려고 뺑뺑이를 돌다가 구급차 안에서 환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병원 예약을 하기도 쉽지가 않고, 일명 빅 5 병원은 몇 달씩 기다리기도 한다고 했다. 더 이상 의료강국 한국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에서는 이미 난자 냉동 끝나는 대로 바로 시작할 수 있다고 풀 대기 중인데 괜히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병원 찾고 의사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3. 의사와 환자의 관계
한국에서는 대학병원 외래진료를 보면 나도 모르게 빨리 질문을 하고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후다닥 질문들을 쏟아내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대화가 오가곤 한다. 그러고는 아, 그거 물어볼 걸이라고 나중에 생각나는 경우도 허다했다.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는 영양사분이 와서 대략적으로 설명을 해주셨고 궁금한 게 있으면 전화하라고 번호를 알려주셨다.
영국에서 의사와 상담하는 것을 consultation이라고 부르는데 30분은 기본이고 나는 질문이 많을 때 주치의 G 나 암 전문의 J 와는 한 시간씩 도 얘기하곤 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담당 간호사를 배정해 줘서 아무 때나 전화해서 궁금한 것들을 질문할 수도 있었고 영양사, 마사지, 운동 트레이너, 마음건강 상담사 등을 연결해 줘서 내가 치료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환자 한 명 한 명을 케어해주고 진심으로 위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암 환자임을 밝혔을 때의 반응이 영국과 한국에 온도차가 많이 나서 처음에 한국에 돌아오고는 상처를 많이 받았다. 이는 병원에서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받은 느낌이었다.)
4. 의료의 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알아본 바에 따르면 유방암은 전 세계적으로 표준치료를 따르기 때문에 어딜 가나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항암제는 어차피 같은 약을 투여하기 때문에 차이가 없고, 수술도 선항암으로 인해서 사이즈가 작아지거나 하면 크게 어려운 수술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도 병원 선택에 대한 질문을 할 때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라고들 이야기한다.
5. 가족과 친구들
내가 런던으로 이사 간 건 불과 3개월 전이고, 친구가 몇 명 있긴 하지만 항암 중에 완전히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편하진 않을 것 같았다. 나의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미국과 서울에 있고, 가족은 모두 한국에 있다. 엄마가 한두 달 런던에 와서 도와주는 것도 고려했지만 도리어 내가 엄마를 챙겨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충분히 의지할 수 있고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한국이 답이었다. 그리고 이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6. 행복도
나는 예쁜 도시, 자연과 공원, 여유로움, 이런 것들에서 보통 행복을 찾는데, 서울은 그런 모습에서 거리가 좀 있는 도시이다. 집 앞에 커다란 공원이 있다면 좀 달랐겠지만 내가 서포트가 필요한 상황에서 따로 집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부모님 집을 이사할 수도 없는 일.
그에 비해 런던은 최상의 조건을 가졌다. 날씨라는 복병만 빼면. 너무 예쁘고 아기자기한 도시에 집에서 10분만 걸어가면 리젠트 파크, 하이드 파크가 펼쳐지고, 그냥 담요 하나 가져가면 드러누워서 책도 읽고 새도 구경하는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집 앞 산책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코스이다. 심심하면 갈 수 있는 갤러리가 무궁무진하게 많으니 나에게는 행복할 수 있는 요소들로 가득 찬 셈이다. 비록 가을 겨울 봄은 어둡고 축축하기 짝이 없지만, 그마저도 어쩔 땐 운치 있다. 더군다나 내가 이 고민을 할 시기는 아름답기 비할 데 없는 한여름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이런저런 장단점들을 비교해가면서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국? 영국? 가족을 생각하면 한국인데, 나머지 요소들은 영국을 말하고 있었다.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때 마음을 정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친구로부터 들은 지인의 얘기였다. 유방암 치료를 영국에서 받으려고 하다가 의료의 질에 크게 실망하고 한국에 돌아가서 치료를 받았고, 치료가 잘 끝나서 지금은 너무나 건강하게 지낸다는 얘기였다. 나와 같은 질병을 가진 사람이 두 군데 모두를 경험했고, 한국을 월등히 높게 평가한다면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결심한 지 하루 반 만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 당시가 가장 고민 많고 마음도 힘들었던 것 같다. 유방암과의 싸움은 기나긴 전투이기 때문에 마음 관리가 중요한데, '기다림' 과 '불확실' 이 두 가지가 환자들의 마음을 참 지치고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며 현재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