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장 먼저 한 일, 회사에 알리다.

암이라는 단어를 나의 입 밖으로 내뱉기까지

by 숭늉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회사에 알리는 것이었다. 워커홀릭이어서가 아니라 머릿속이 하얘져서 당장 눈 앞의 일밖에 할 수가 없었다.


길어봤자 20분이면 끝날 줄 알고 건강검진 직후에 잡아놨던 미팅을 거의 30분을 늦어버렸고, 근처 카페에서 겨우 들어간 미팅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카메라도 켤 수가 없었다.


당시에 회사에서 핵심 프로젝트에 투입된 지 일주일 된 상황이었고, 나는 너무 신나고 일이 재밌어서 의욕이 넘치던 때였다. 하지만 앞으로 당장 병원에서 진행해야 할 검사가 줄을 이었고, 이런 식으로 계속 병원에 다니게 되면 회사 일에는 당연히 신경을 쓸 수가 없을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되도록 빨리 얘기하고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곧바로 미국에 있는 매니저에게 잠시 얘기할 수 있냐고 했고, 비디오 콜을 했다. 매니저의 얼굴을 보자 도저히 목이 메어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고,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내가 암에 걸렸다고 스스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 입으로 말해버리면 진짜 그게 사실이 될 것만 같았다. 이미 사실인 걸 아는데 인정할 수가 없었다. 말을 잇지 못하는 나에게서 이상함을 눈치챈 매니저는 전화로 얘기하자고 했다. 핸드폰으로 걸려온 전화에 나는 그제야 엉엉 울면서 내가 유방암이래...라며 소식을 전했다.



내 매니저는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이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쭉 함께했는데, 나를 항상 잘 챙겨주는 매니저이자, 배울 점이 참 많은 멘토이자, 마음을 나누는 친구이자, 기댈 수 있는 동료이다. 너무나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고, 열정적이고, 일 욕심 있고,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사람이어서 나는 이 사람이 내 첫 매니저라는 사실에 너무나 감사하다. 그런 그녀에게 한참을 위로받고 - 사실 어떤 말을 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 다음날 나는 회사로 출근을 해서 팀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앞으로 출근이 힘들 것 같고 병가를 내겠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영국 둘 다 마찬가지로 이런 질병으로 인한 휴직에 있어서는 굉장히 관대한 편이다. 정부에서 나오는 지원금 덕분에 (미국은 적어도 매사추세츠에서는 그랬다) 일을 못 하게 되더라도 일정 기간 동안 월급 (혹은 일정 부분) 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인식 또한 관대해서 - 아니면 내가 속한 회사와 우리 팀원들이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어서 -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내일부터 일을 할 수 없다고 얘기했는데도, 다들 부디 치료에 집중하고 일은 생각도 말라고 위로해 주었으며 그 후로도 많은 지지와 응원을 해 주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런던에서 기차로 한 시간 넘게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집은 런던 센트럴에 있어서 출퇴근하려면 왕복 4시간이 걸린다. 일주일에 세 번 하는 출퇴근에서 어떻게든 가는 횟수를 더 줄이고 싶었는데. 시골이라고 맨날 불평했는데. 이젠 정말 안 가도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씁쓸해졌다.

keyword
이전 01화영국에서의 건강검진과 유방암 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