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날
나는 지난 7월 31일,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약 3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동안의,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내 스스로를 위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졌고, 기왕이면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내가 이 병에 대해 공부하며 배운것들과 겪은 것들을 공유하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나도 처음에는 우왕좌왕 어찌할 줄을 몰랐고, 그럴 때에 읽은 다른 사람들의 경험들이 나에게도 할 수 있다 라는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런던에 산다. 서울을 떠나 보스턴을 거쳐 영국에 산지는 일 년 남짓, 런던에 살게 된 지는 삼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작년에는 영국으로 리로케이션을 하느라 놓쳤던 건강검진을 올해는 받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미루고 미룬 끝에 7월 22일에야 검진을 받게 되었다.
이런저런 문진부터 시작해서 간단한 혈액검사, 정신건강 검사, 심폐지구력 검사 등을 했고 수치들은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낮아야 할 콜레스테롤은 낮고 높아야 할 콜레스테롤은 높고,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모든 수치들이 정상 혹은 이상적인 수치였다. 의사에게 내심 뿌듯한마음을 농담삼아 이야기할 정도였다. 마지막 남은건 유방검진이었다. 의사선생님은 여자분으로 교체되어 들어오셨고, 직접 가슴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검사하는 형식이었다. 이런식의 아날로그 검사는 해본적이 없어서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별 문제 없으려니 생각하고 있었던 때였다.
"여기 이런거 있는거 알고 있었어?"
"음.... 아니? 이게 뭐지?"
"조직검사를 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 Breast specialist 를 연결해줄게. 나갈때 앞에 리셉션에서 예약잡고가면 돼."
의사가 지적한 곳에는 돌기가 살짝 올라와있었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크기였다. 몇번 더 이리저리 만져보고 하더니 조직검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나는 그 당시에 왕복 4시간 거리의 회사로 출퇴근을 주 3회 하고 있었고, 따라서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병원 핑계로 회사를 하루 더 안가고 재택근무를 할 수 있을까 였다.
다음 예약인 7월 25일, 나는 내 영국 주치의 G 를 처음 만나게 된다. 그는 굉장히 유쾌한 사람이었고, Andrew Huberman podcast 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친숙하게 들릴 얘기들 - 예를 들면 수면의 질이라든지 Circadian rhythm 이라든지 하는 -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약 20분가량 혼자 해댔다. 아마도 환자와의 관계 빌딩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한참을 수다떨고는 문제의 부위를 한번 보자고 하더니 조직검사를 하자고 했다. 들어간 처치실에는 두명의 의사가 더 있었고, 어떤 방식으로 검사가 진행되는지 아주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총처럼 생긴 이 기구는 아주 큰 이런 소리를 낼거고 (탕 탕) 우리는 총 세 번을 찌를거야. 소리가 굉장히 크니까 놀라지 말고. 아마 신경세포가 많이 분포된 유두 근처여서 많이 아플거야."
"이게 대체 뭘까? 나 뭐 걱정해야하는 거야?"
"아니야. 피부 바로 아래에 있어서 이렇게 육안으로 보이기까지 하잖아. 보통 안좋은 경우에는 더 안쪽에 있는 경우가 많아. 이건 아마 별거 아닐거야 - 아마 그냥 둬도 될거고. 뭐 안좋은 경우에는 떼어내야 하기도 할텐데 그건 그때가서 보자."
조직검사는 정말로 너무너무 아팠다. 마취가 제대로 안돼서 그 통증을 온전히 다 느꼈고 정말 욕나오게 아팠다. 하지만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별거 아닐거라고 얘기하는 의사의 말에 그저 안심이 되었고,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만큼 나의 건강에 자신감과 오만이 넘쳤다.
결과는 3일 후 쯤 나올거고, 전화로 알려줄게. 혹시라도 다음주 화요일까지 연락이 없으면 전화 줘. 그리고 전화 받는데 회사라던지 미팅중이라던지 그래서 가슴 유두 뭐 이런 단어 말하기 좀 그렇다 하면 나한테 눈치 줘. 내가 잘 알아듣고 눈치껏 얘기할게 하하
이런 농담까지 하는 G 덕분에 나는 나의 가슴에 돌출되어있는 이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악성종양이라거나, 그런 것에 대한 단 한치의 걱정이나 의심 없이 주말을 보냈고, 그냥 때가 되면 알아서 연락이 오겠거니 기다리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 암, cancer 이라는 단어는 아예 입력되지 않은 상태였다.
화요일이 되었다. 병원 리셉션에서 전화가 왔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혹시 병원 오늘 오후 12시에 올 수 있어?"
"오늘은 회사 출근해서 안되고 내일은 어때?"
"그럼 내일 예약 잡아줄게."
응? 결과는 전화로 알려준다더니. G 랑 reception 이랑 뭔가 의사소통이 안되었던건가? 아님 혹을 떼어내야 하는 경우인건가? 가보면 알겠지.
이렇게 나는 여전히, 내가 마주하게 될 상황은 상상도 해보질 못한채로 병원으로 향했다.
"Hi G, how are you?"
지난번의 스몰톡이 강렬해서였을까 아주 밝게 웃으며 친근감을 가지고 인사한 G 는 뭔가 어두워보였다. 왜 그러지? 오늘은 웃지도 않고. 기분이 안좋아보이네.
"Hi Sue, I'm good, thanks for asking. Well, 지난번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어."
"응 그런데? 어땠어?"
"I'm really sorry, Sue. We found it cancerous."
...?
머리가 순간 정지되었다. 너무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오피스에는 적막이 흘렀다.
cancerous? 암..? 내가 암이라고? 이게 무슨 소리지? 농담인가보지. 음 근데 이상하다 왜 haha I was just kidding 이라고 안하지? 언제까지 기다렸다가 말을 하려고? 근데 의사가 그런 장난을 쳐도 되는건가? 좀 말이 안되는데... 설마 이게... 장난이 아닌가? ...사실인가?
몇 초 사이에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고,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물었다.
"....You are not kidding. 너 장난치는거 아니구나."
"No, I'm not.. I'm sorry. 아니야. 이런 소식 전해서 정말 미안해.. 지금부터 설명을 해줄텐데 혹시 전화해서 같이 들을 사람 있어?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면 지금 전화하는게 좋을거야."
머리가 얼어붙어서 사고가 잘 되지 않았다. 누구에게 전화를 하지? 가족? 엄마아빠 너무 충격받을텐데. 언니에게 해야하나? 온갖 의학용어가 나올텐데. 영어를 알아들을까? 나 영국에 아직 이렇다할 친구가 없는데. 미국에 있는 친구들? 누구에게 해야하지? 지금 이제 아침 8시일텐데. 다들 일어는 났으려나? 아... 모르겠다 일단 혼자라도 듣자.
G 는 차근차근 유방암의 타입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해나갔고 나는 내가 이것들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헤어짐을 고했고 이에 대해 의논 중에 있던 남자친구에게 결국 전화하게 되었다. 다행히 그는 전화를 받았고,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한번 시작된 눈물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소리없이 울면서 유방암에 대한 첫 지식을 쌓아나갔다.
나의 암 타입: 침윤성 유방암 (Invasive ductal carcinoma breast cancer) 1.5cm, 삼중양성 (triple positive ER+ PR+ HER2+), 분열속도 중간(grade 2), 1기 (stage 1)
앞으로 받게 될 검사 및 시술과 치료방법: CT, PET CT, MRI, 선항암 (neo-adjuvant treatment), 케모포트 (port), 클립 삽입 (coil marker insertion), 수술 (surgery), 표적치료 (targeted therapy), 방사선치료(radio therapy), 호르몬치료(hormone therapy)
지금은 익숙하지만 그 당시에는 영어와 한국어를 오가면서 쏟아져들어오는 새로운 정보들을 머리에서 이해하고 처리하려고 애써야 했다.
G 는 그 뒤로도 항상 암 치료 이후의 삶에 대해서 강조했다. 그와 얘기하고 있으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다 지나갈 일이고, 나는 그냥 다시 곧 내 삶으로 복귀해서 평소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담으로 나는 이후 병원 방문에서 테니스 레슨 끊어둔 거 환불 신청해야하니 노트를 써달라고 했는데 Of course! Why would you cancel it tho? Yes of course you can!!! Go play tennis! 라면서 일상생활을 그대로 이어나가라고 했다. 일을 병행하는 사람도 많고 그게 너의 활력에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나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서 치료를 하기로 결정했지만, 만약 영국에서 그대로 치료를 하기로 결심했다면 어떤 마음으로 치료에 임할 수 있었을 지 궁금하기도 하다. 가족은 곁에 없지만 의사와의 관계에서는 훨씬 즐겁지 않았을까.
2024년 7월 31일은 나의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날이다. 진단을 받고 밖으로 나온 나는 그 이전과 똑같은 나이다. 겉으로 봐도 똑같고, 몸 어느 곳도 아프지 않다. 나는 아직 그대로의 똑같은 나인데, 한 순간에 암환자가 되었다. 세상이 뒤집힌 기분이었다.
나는 오늘, 암 진단을 받음으로 해서 유방암환자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평생을 오래오래, cancer survivor 로 살아갈 것이다. 이 진단을 계기로 하여 건강에 좀더 주의를 기울이고, 몸을 챙기고 주변을 챙기면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그리고 좀 더 중요한 것, 본질, 내게 소중하고 의미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