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관점의 차이
암 진단을 받음과 동시에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 항암을 하면서 체력과 건강을 잃고 있고,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여성으로서 가임 능력을 잃을 수도 있고, 직장에서 한창 재밌게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회를 잃었다.
나의 일상은 사라졌다.
회사를 더이상 갈 수 없고,
이삼일에 한 번꼴로 치던 테니스를 더 이상 칠 수 없고,
런던 집 앞의 아름다운 산책길과 집 앞 공원을 갈 수 없고,
내가 좋아하던 가구와 물건들로 꾸며놓은 집에 더 이상 살 수 없고,
단골이 되어야지 결심했던 너무나 좋아하던 집 앞 카페에도 갈 수 없고,
간간이 나가던 밋업들도 갈 수 없게 되었고,
런던 친구들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마치 내 앞에 드넓게 펼쳐졌던 수많은 기회와 꿈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 것 같았고, 내가 미래의 계획을 논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마저 들기도 했다.
하지만 잃어버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얻은 것 또한 많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하나의 레이어가 추가되었다. 이전이라면 쉽게 지나쳤던 것들, 무심했던 것들에 좀 더 관심 가지고 귀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돌이켜보니 이전의 내가 주변의 안타까운 사연들에 대해서 할 수 있던 공감이 얼마나 막연하고 얄팍한 겉핥기였나 깨닫는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예상치 못한 도움의 손길이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큰 의미이고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
하루의 소중함을 이제는 조금 더 안다.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이 더욱 절절히 전해온다. 나의 시간을 의미 없이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 걸 배웠다.
치료를 위해 한국에 돌아옴으로 인해 역으로 가족들과 기대치 않게 몇 달씩이나 긴 시간을 보낼 기회가 생겼고, 태어난 지 팔 개월 된 조카가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이건 런던에 원래대로 쭉 살고 있더라면 누리지 못했을 사치다.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엔 참 감사한 일들이 많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유방암이 몸에서 떼어낼 수 있는 암이라는 것에 감사하고,
비교적 조기에 찾아낸 것에 감사하고,
젊은 나이에 발견해서 버텨낼 체력이 있는 것에 감사하고,
지금까지 무탈하게 살아온 것에도 감사하고,
힘들어서 뛸 수는 없지만 여전히 걸을 수 있게 버텨주는 두 다리가 있어서 감사하고,
미혼이고 아이가 없어 챙겨야 할 식구가 없어서 가볍고 걱정이 없어 감사하고,
전격 서포트를 받을 수 있는 가족이 있어서 감사하고,
늘 응원해 주는 파트너와 친구들이 있어 감사하고,
필요한 만큼 원하는 대로 휴직을 할 수 있는 회사를 다니고 있어 감사하고,
영국에 살아서 무료 의료 혜택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하고,
나의 뿌리는 한국이라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를 누릴 수 있어서 감사하고,
선항암을 할 수 있는 사이즈여서 항암제가 잘 작용하는지 확인해 볼 수 있어서 감사하고,
항암제가 잘 듣는 편이라 완전관해를 노려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리고 표준치료가 끝나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나에게 아직 빛나는 미래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내가 왜 암일까, 왜 하필 내가 걸렸을까, 조금 더 일찍 발견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끝없는 지옥은 사람을 옭아매고 현재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이건 그냥 갑작스러운 사고 같은 것이다. 나는 그저 죽음을 이전보다 조금 더 인지했고, 조금 가까워진 거리를 유지하면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 가까워진 걸음으로 인해 내 인생은 조금 더 의미 있어질 것이다.
최근에 읽은 책 When Breath Becomes Air에서 신경외과 레지던트였던 저자 Paul Kalanithi 는 36세에 폐암 4기 진단을 받는다. 그는 투병 중 아내와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We decided to have a child. We would carry on living, instead of dying."
"우리는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죽어가는 대신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는 암 치료 중에 신경외과 일을 계속하며 수술대에 서기로 결심하면서는,
"That morning, I made a decision: I would push myself to return to the OR. Why? Because I could. Because that's who I was. Because I would have to live in a different way, seeing death as an imposing itinerant visitor but knowing that even if I'm dying, until I actually die, I am still living."
"그날 아침 나는 결심했다. 수술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왜냐고? 난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게 바로 나이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런던에 있을 때 회사 내가 암에 걸렸다고 회사 동료에게 얘기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나중에 손자 손녀에게 들려줄 멋진 얘깃거리가 하나 더 생긴 것뿐이야. 넌 정말 강한 사람이고, 잘 이겨낼 거야."
그날이 올 때까지 유병장수 하면서 나를 돌보며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두려워하고 걱정하며 죽어가는 대신, 빛나는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