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의 삶이 무너지다.
역대 개고생을 하며 셀프리모델링으로 일궈낸 우리 집. 허투루 만들어진 게 하나 없이 모든 것에 에너지를 쏟았고 결과는 꽤 흡족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양하고 있어서 집안에 필요한 물건 외에는 들이지 않아 쾌적한 집이 유지되었고 한 포털사이트의 메인에 여러 차례 소개되기도 하면서 한 해의 베스트 인테리어 전당에 오르기도 했다.
리모델링이 끝나는 날 임신테스트기를 해봤더니 두 줄. 오... 임신이다. 이 집에 오니 좋은 일이 생기네. 기쁜 마음으로 임신 기간 동안 예쁜 집을 즐기며 태교를 했다. 예쁜 화분과 꽃들을 들이고, 깨끗하게 유지하면서 꿈과 같은 집에서 아기들과 함께 할 날을 기다렸다.
인스타그램에 멋진 인테리어와 육아도 잘하고 있는 엄마들을 보며 '아기 낳고 엉망으로 사는 사람들 이해 안 돼. 나도 그녀들처럼 아름다운 집을 꼭 유지하겠어. 그것은 나의 로망이야.'라고 단언했다. 미니멀 라이프 역시 잘 유지하겠다며 호기롭게 아기와 함께하는 미니멀 라이프와 관련된 책을 읽으며 태교를 했다.
쌍둥이 탄생을 기다리면서 아기 침대 두 개를 들였다. 집안의 콘셉트에 맞게 화이트로 구입하고, 아기 물품도 꼭 필요한 물건 로만 선별하여 하나씩만 구입했다. 집안의 인테리어를 해치는 것은 집에 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미니멀 라이프 하던 집 어디 갔나요? 아가들의 성장발달에 따른 물건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가족 둘이 늘어났으니 물건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아가들을 도와주러 와 주는 사람들의 물건도 추가되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집안의 분위기를 해치는 걸 들이지 않는다는 철칙이 깨지는 순간이 왔으니, 국 민 매 트. 우리 집에도 깔렸다. 최대한 늦추고 싶었지만.
그 후로 물 밀듯 들어오는 아가용품과 장난감. 알록달록한 색감이 많아지면서 한동안 멘붕이었다. 하루는 친구가 집에 와서는 '너 알록달록한 거 혐오하지 않았냐?'라고 했다. '어.... 아니, 이젠 포기했어.'
육아하면서 아기와 함께하면 미니멀 라이프는 사치였다. 나와 신랑의 물건에는 미니멀리즘이 적용되지만, 아기들 용품에는 적용을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하루가 다르게 쌓이는 아기 용품에 속이 답답했다. 하지만 왜 여러 개를 쟁여야 하는지 곧 알게 됐다. 육아에 치여 쇼핑할 시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구입할 물품 또한 많아서 언제 떨어질지 예측을 하기도 힘들다. 고로 물건을 쟁여야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은 알록달록한 키즈 카페가 되어가고 있었고 미니멀 라이프는 안드로메다로 떠났다.
그러나 재미있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꿈을 이룬 것 같아서 코 끝이 찡하다. 집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집에 사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일까. 어수선해지고, 알록달록 키즈카페가 된 우리 집이지만 한층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