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가족과 함께 백화점을 갔다. 그날도 역시 쌍둥이는 이목을 끌었다.
“어머 쌍둥이야.” 어머 어머 소리를 사람들과 지나치는 내내 듣는다.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지, 어느 순간이 되면 피로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조금은 피로한 채로 유아차를 끌고 가는데 “어머. 쌍둥이네. 나는 쌍둥이 낳는 게 로망이야.”라고 남자 친구쯤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한 여자가 말했다. 그 커플을 지나면서 우리 부부는 서로 마주 보며 쓴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쌍둥이가 로망이라니.’
사람들은 쌍둥이 키우는 게 신비하고 즐거운 일로 여겨지나 보다. 사실 전쟁도 이런 전쟁이 없는데 말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젖을 두 명에게 나눠 먹여야 하고, 분유로 바꾸는 시점이 와도 둘의 분유 먹는 텀이 다르기 때문에 둘을 돌아가며 분유를 먹이느라 밤새 뜬 눈으로 지새야 한다. 이때 도와주는 사람이 꼭 필요한데, 그 손길을 구하는 것도 너무 힘이 든다. 베이비시터도 쌍둥이라고 하면 다들 절레절레 기피하고, 그나마 오시는 분도 두 배로 페이를 드려야 한다. 친정 엄마가 산후 한 달을 도와주셨는데 한 달 사이에 십 년 늙으셨다. 그리고 둘의 성향이나 개성에 따라 달리 키워야 하기 때문에 애정을 줄 때도 신경을 각별히 써야한다. 그뿐 만이 아니다. 아기들이 사용하는 용품을 모두 2배로 사야 하니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된다. 그것이 리얼, 현실 육아다.
그러나 쌍둥이는 축복이다.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수가 없다. 비슷한 듯 다른 둘의 외모와 성향이 신비하고, 둘이 노는 걸 보면 서로에게 평생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든든하고 흐믓하다. 또 옷 입히는 재미는 또 어떠한가. 비슷한 디자인의 옷의 색상을 섞어서 매치하면 오늘의 귀여움이 완성된다.
하지만 쌍둥이 잘 기르는 건,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두 배 이상 필요로 하니까 그 감당을 할 수 있을 때 쌍둥이를 낳길 권유한다. (낳고 싶다고, 낳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러니 제발, 쌍둥이 낳는 걸 로망으로 보는 환상에서는 깨어나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