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구독 서비스
리디페이퍼 프로. 리디북스만 볼 수 있는 전자책리더기라니. 리디북스가 배가 불렀나. 무슨 배짱이지. 남 걱정이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라더니, 웹소설만 보는 플랫폼이라고 인식했던 곳이 전자책 시장에서 급성장을 했단다.
1+1 이벤트가 아니었다면 후보에도 들이지 않았을 기기였다. 기기보다는 리디셀렉트 1년 이용권이 너무 끌렸다. 이북리더기에 입문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기에 두 번째 기기를 들였다.
종이에 인쇄된 글씨보다 액정에 비친 글씨를 보는 시간이 더 길어진 일상이다. 활자 중독자에게 스마트폰은 축복일 수도 있지만 독서라는 행위를 하지 않아도 활자를 읽게 된 또 다른 재앙일 수도. 이북으로 대체하기에 ‘글’은 무수히 많았다. 인터넷 기사가 종이신문을 대체할 수 없듯이 전자책은 종이책을 대체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전자책 단권 구매 가격이 너무 애매했다. 나의 것이라지만 나의 것이 아닌 무형의 개체가 종이책 정가의 80% 수준이라니. 가격정책에 여러 가지 원인과 흐름이 있었다는 것 같지만 어쨌거나 선뜻 결제를 시행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고 그쯤 떠오른 것이 ‘전자책 구독 서비스’였다.
리디셀렉트 한 달 체험 이용하다가 다음 결제일 직전에 취소하는 일을 반복했다. 당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퇴근을 했음에도 한 권 완독도 힘들었다. 정확히는 읽고 싶은 책들이 구독 가능 리스트에는 없었다. 겨우 한 권을 골라서 억지로 읽기는 했는데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원래 이 책, 저 책 들척이면서 보는 것도 독서 습관 중 하나라는데 웹소설은 밤을 새우면서도 열심히 읽는 걸 보니 그냥 읽기가 싫었던 거였다.
독서 편식이 심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였나.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는 어땠나. 생각해보면 그때도 보고 싶은 책을 고르는데 한참이 걸렸다. 독서할 책을 고르는 행위를 서점에서 했고, 인터넷 서점에서 했을 뿐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출퇴근 시간이 자가운전으로 바뀌면서 독서 가능 시간은 더 줄어들었다. 그나마 아이들이 자라면서 집에서 쉴 때 아이들만 바라보며 전전긍긍하던 시기를 벗어나니 조금 숨통이 트였다. 짬 날 때마다 SNS를 들여다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웹소설도 재밌지만 먹던 것만 먹는 것도 물리는 것처럼 다른 책들을 들쳐보고 싶었다. 책을 사지 않아도 시간 날 때마다 서점을 기웃거렸던 그때처럼.
아 그래. 리디셀렉트 월 정기 구독료의 진정한 의미는 서점을 기웃거리는 그 느낌으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돈을 지불하였으니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욕심을 버리니 마음이 편해졌다. 연말연초-인사이동 시즌까지 겹칠 때는 리더기는커녕 리디셀렉트 페이지를 볼 생각도 못했다. 그래도 쉬는 날에 잠깐이라도, 한두 페이지라도 보면 그걸로 족한 것이 아닐까(실제로 5개월 간 다섯 권 정도 봤는데 하루 이틀 몰아서 본 분량이 대부분이었다).
구독 서비스와 별개로 리디페이퍼프로 기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물리키가 있다는 건 아주 큰 장점이었다. 액정과 전자잉크도 선명해서 잔상이 심하게 남는 크레마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반대로 크기가 애매하게 컸다. 크레마는 자러 들어갈 때 챙길 수 있었는데 리페프는 부담스러웠다. 액정 크기 대비 두께는 얇았지만 그래서 금방 부서질 것 같았다. 크레마 때도 그랬지만 커버를 사고 파우치도 샀다. 설탕 액정이라는 이야기에 액정 필름도 샀다가 선명도가 너무 떨어져서 떼어버렸다.
애매한 액정의 크기만큼, 선명함만큼 밝기도 애매했다. 색감을 최대한 부드럽고 어둡게 낮췄는데도 가족들의 수면을 방해하는 느낌이었다. 딸깍거리는 물리키 소리까지 더해져 예민한 남편이 잠을 못 잔다고 하소연을 했다. 남편보다는 더 가까이 붙어서 재우는 둘째의 발에 차이거나 깔리기도 했다(크레마는 작아서 오히려 틈새 공간에 잘 보관할 수 있었는데).
원래 기기 배터리 자체가 용량이 적은 건지 소모량이 크레마보다 많은 건지는 모르겠는데 자주 충전을 해줘야 하는 것도 단점이었다. 슬립모드 상태에서 자동 방전이 되어버리는 일이 빈번했다. 슬립모드에서 바로 전원을 차단시켜 방전을 막아보고자 했지만 그러면 또다시 전원을 킬때마다 와이파이를 다시 잡고 어쩌고저쩌고. 충전해야 하는 전자기기가 많은 요즘 시대에, 매일 사용하는 기기가 아니어서 조금 불편했다. 그래서 다들 태블릿으로 정착하는 것일까.
루팅을 하면 다른 서점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섣부른 모험은 하지 않은 일반인에게 리디페이퍼는 굉장히 폐쇄적인 기기이다. 그래도 뭐, 웹소설이나 만화 등 어느 한쪽 장르에서 이벤트를 자주 하는 곳이라 이용도가 높은 사람에게는 활용도가 나쁘지는 않았다(스마트폰으로 보기에는 글씨가 너무 작아서 미뤄두었던 만화책 완결작들을 몰아서 보니 편하기는 했다.).
최근 교보에서 나온 샘이라던가 그 외 다양한 이북리더기를 고려해본다면 동일선상에서 고려하기는 어려운 기기인 것은 사실이다.
영상에서 음악, 책까지 구독을 하는 시대에 전자책 구독 서비스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그렇게 구독만 해놓고 읽지 않는다면 구독을 취소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사놓고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던 수많은 책들을 떠올려본다면 마이셀렉트 책장을 그런 느낌으로 놔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월마다 자동으로 결제되는 내역들을 살펴보면서 한숨을 내쉬다가도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해본다.
베로니카. 즐겁게 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