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히며 열린 전체로서 끊임없이 창발하는 세계, 그리고 우리
무언가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구를 든다. 막막했던 상을 종이 위에 하나하나 올려본다. 첫 밑그림의 엉성함은 나를 위축되게 한다. 그래도 한 번 더 색을 얹어본다. 조금씩 색을 쌓아올리며 다듬어가는 과정이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대상의 밝음과 어두움, 색다른 색감과 감정선들이 드러난다. 재차 바라보자 드러나는 새로운 점과 선들의 조합. 어쩌면 그리는 행위는 나의 본질과 대상의 본질이 소통함으로써 세계와 재접지되는 과정일지 모르겠다. 섬세하게 바라보고 그려내는 과정에서의 무아의 상태와, 갑작스레 느껴지는 대상과의 거리감 속에서 느끼는 낯섬의 반복. 그 과정은 나로 하여금 내가 현재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생명은 닫히며 열린 전체로서 끊임없이 창발하는 존재이다. 생명작용을 위한 꾸준하고도 일정해보이는 신진대사 활동, 즉 동화와 이화 작용의 반복 속에는 무수한 창발적 과정이 숨어있다. 신진대사라고 하는 무의식적 습관의 반복 속에서 어떤 습관을 획득되고 어떤 습관은 폐기되며 새로운 습관들이 재창조되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무언가를 섭취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망막에 자리잡은 원추세포는 형형색색의 색들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안정적인 색(초록색, 푸른색)과 위험/경계의 색(적색) 등을 판별할 수 있게 되었다. 혀의 미각 수용체, 코의 후각 신경 역시 마찬가지이다. 숨을 쉬는 행위, 걷는 행위, 배설하는 행위 모두 끊임없는 습관의 반복과 폐기, 재창조의 과정을 거친다.
의식은 무한한 무의식을 기반으로 형성되기에, 의식은 무의식을 수반하며 연속되어 있다. 그렇기에 내가 바라보는 행위, 바라보는 세상을 그려내는 행위 역시 신진대사와 같은 하나의 생명 활동의 연장선이다. 세상(타자와의 관계)을 받아들이고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행위를 통해 ‘나’는 ‘우리’와 세상을 느끼고, 비로소 ‘살아있음’을 실현한다. 그린다는 행위는 열린 전체로서의 세계와 우리, 자신에 대한 감각을 확장하는 행위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생명으로서 살아가는 과정으로서의 드로잉. ‘나’라는 존재는 세계에 속해있으며 세계에로 참여하는 겸손하면서도 용기있는 존재라는 것을 감각하는 과정으로서의 드로잉. 열린 전체로서 진정한 생을 살아가는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