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나무

산책길에 만난 즉흥과 응축

by 은유

산책 길을 나서는데 눈이 조금씩 내렸다. 올해 내린 몇 번의 눈과는 굵기와 양이 다를 듯한 느낌에 설레, 쌓여있는 눈밭에 발자국을 남겼다. 한발한발 거닐며 즉흥적인 눈의 춤사위를 바라봤다. 요즘은 마스크를 끼고 안경을 쓴 채 나가면 김이 너무 서려서, 안 쓰느니만 못한 시력을 선사하기에 안경을 벗고 다닌다. 그래서 더 춤사위같아 보였던 눈의 휘날림. 바람 따라 이리저리 휘날리는 눈들의 움직임에, 저렇게 현재에 충실한 결정체가 또 있을까 싶은 울림이 몰려왔다. 날이 꽁꽁 얼어붙을 것만 같은 날,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습도가 만나 만들어내는 수분의 결정체. 그 순간 마음껏 내리다가 어느 순간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눈의 초연한 날림을 마주하며 걷고 뛰고 걷고 걷고 뛰고 걷는 밤의 시간.

그러다 문득 눈이 쌓인 나무를 바라본다. 평소에도 중력에 몸을 맡겨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나무들의 응축된 굳건함과, 중력이 뭔지 모를 것만 같이 솟아오른 새순의 치켜든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그런 나무의 가지와 잎새 위에 눈이 내려 앉았다. 오랜만에 비교적 긴 순간을 머무는 눈의 결정체를 맞이한 나무는 어떨까. 시려움에 나뭇잎을 툭, 내려놓을까. 무탈했던 긴긴 하루의 와중에 내려앉은 눈의 온도에 놀라 이를 응시할까. 오랜만에 머물러가는 눈을 반기며 좀더 머물러 있기를 바랄까. 즉흥적인 자연과 응축된 자연이 만나면 어떤 대화를 나눌까. 한결같은 초연함으로 그 순간의 황홀함에 젖어들 것만 같다.


눈사람을 만들어본다. 오늘의 낯선, 내일도 계실지는 아무도 모르는 손님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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