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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유 Jan 05. 2021

단단한 껍질에 싸여

숨어야 할 때 혹을 숨고 싶을 때

  문어는 천적으로부터 목숨을 지키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조개껍데기를 이용한다. 자신의 천 이백여 개의 빨판으로 조개 껍데기를 가져와서는 급소인 머리를 중심으로 하여 감싼다. 마치 산호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고는 한참을 있다가 천적이 사라지고 나면, 조개껍데기들을 내려놓고는 금세 다리의 추진력을 이용해 굴속으로 사라진다.


  문어는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이곳 저곳에 숨는다.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  동물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유희마저도. 인간이 타자와 관계를 맺는 것 또한 목숨을 유지하기 위함이겠다. 그렇다면 관계로부터 벗어나려 할 때, 관계로부터 회피하려 하는 행동 또한 그 기저에는 자신의 생을 보존하고자하는 절박함에서부터 나오는 행동일 수 있겠다. 저 조개껍데기를 떼어낼 때에는 안전하다고 느껴질 때이기에.

 

   천적이 없는 상황에서도 있다는 착각에 조개껍데기를 들어올려야만 안전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서글프다. 당신이 들어가버린 조개껍데기 밖에서 당신의 천적을 발견하지 못하는 내가 서글프다. 당신만이 발견했을 그 천적이 얼마나 두려울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 혹시나 당신에게 상처출 천적이 나는 아닐까하는 마음에 두려워지기도 한다. 그저 기다리면 되는 걸까, 다가가서 인기척이라도 내야 하는 걸까. 이리저리 빙빙 맴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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