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하는 삶

바퀴가 아닌 발이 이끄는대로

by 은유

이동이 제한된 2020년의 수개월. 지난 날 다녀온 여행지을 떠올려본다. 고대의 유적지들, 자연의 찬란한 장면들, 함께 거닐었던 여행 동반자들을 떠올린다. 푸른 하늘 아래 잔디에 앉아 마셨던 편의점 와인 한 잔, 길을 잃어서 우연히 들어갔다가 마주친 우물 속 물고기, 방파제 언덕 위에 앉아 사랑을 노니는 연인들.

생각의 흐름들은 이어지다가, 매번 여행의 순간에 들어서게 해주는 원초적인 이동 수단인 나의 발에 생각의 눈길이 닿았다. 어느샌가 발가락들은 자신들만의 배열을 맞춰 모양을 변형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들을 거친 모습이다. 나의 발걸음 습관, 내가 거닐었던 땅의 습성들, 걷는 행위 동안의 느낌 감정들이 곳곳에 스며든 채 남아있는 발. 이 발을 지니고서 앞으로 어디를 어떻게 거닐 수 있을까.

바퀴 중심의 유목이 아닌 발 중심의 유목하는 삶을 살고 싶다. 바퀴가 이끄는 대로의 삶이 아닌 발이 이끄는 대로의 삶.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돌아가는 그런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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