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벌어서 낮잠을 자자.
이제 어엿한 4년 차 귀촌인.
누가 시골생활에 대하여 물어본다면 얕은 조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실내화분조차 죽이기 일쑤인 나는 식물을 재배하고 다루는데 영~재주가 없어서 텃밭에 대한 도움은 안 되겠다.
한 번은, 실내 식물이라도 볕을 봐야지 싶어서 밖에 뒀다가 집 안에 들이는걸 깜박하여 서리를 맞게 했다. 또한 반그늘에서 자라는걸 직사광선에 둬서 잎이 타기도 했다. 귀신 머리처럼 축 늘어진 잎사귀들을 잘라내니 짧게 남은 잎사귀가 몹시도 초라하다.
집에 둬서 죽을 위기에 놓인 화분을 작업실로 데려왔다. 우스꽝스러운 스포츠머리의 화초를 보며
“난 왜 이리 돌보기를 못하는가......” 책망한다.
그러다가 작업실 내부를 돌아보니
그렇지는 않다고 말하는 증인들이 수두룩하다.
그래, 내가 돌보는데 완전 꽝은 아니지?
늘 가사일이 대기 중인 집에서는 화분까지 손이 닿지 않는다. 집에서도 그림을 그리려고 화구를 싸들고 가면 펼치기는커녕 먼지만 쌓인다. 책도 그렇다.
집에서 내가 돌볼 수 있는 총량의 한계는 세 끼 식사 준비와 그 뒤처리와 세탁과 청소와 백구 세 마리 개별 산책.
거기까지인걸 인정하고 뭘 더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못해 쌓인 죄책감 내지는 부채감이 나의 행복과 만족감을 갉아먹을 뿐이다.
나는 왜 귀촌을 했을까?
내가 시골에 사는 이유는 내 집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시골은 도시에 비해 땅 값이 많이 저렴하니까.
도시나 그 근교에서 현찰로 집을 사기엔 벽이 너무나 높고 빚 내고 갚는 것도 능력이라~
왜 집을 가지려 하는지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생략. 또, 가능하면 서울에서 멀어져 친구나 가족에게서 물리적 거리를 두고 싶기도 했다.(내 삶을 그냥 내버려 둬~)
그렇게 집이 생기면 월세나 대출에 발목 잡히지 않아서 낮잠 잘 시간을 늘릴 수 있겠다는 계산의 결과가 바로 시골이었다. 누가 그랬더라? 하루의 1/3 이상을 남을 위해 쓰면 노예라고.
24시간 - 수면 8시간 = 16시간.
16 나누기 3 = 5시간 남짓.
그러니까 반나절만 남 일 하면 적당히 할만하고
또 나 같은 사람은 저축도 가능할 것 같다.
그리하여 그 나머지 시간에 낮잠이나 자는 것.(여기서 낮잠이란, 어른들 보기에 돈도 안되고 쓸데없는 생각이나 행동을 말함.)
농사?
농사도 역시 내 작업을 이어갈 목적의, 그저 소비를 줄이기 위한 계산의 일부일 뿐.( 식비를 줄이는 수단도 되지만 좋은 거 먹고 건강해야 병원비도 덜 쓰므로)
내 사고의 확장에 큰 기여를 한 귀촌 여행.
어르신들의 소우주에 연고 없이 맨 몸으로 뛰어들어 융화된다는 것. 지위나 역할이 없어진 알몸의 나를 확인한다는 것. 그이의 ‘혼자 집짓기’처럼 모르니까 가능했던 걸음이지 않았을까. 이런 것까지 계획하고 귀촌한건 아니었지만 크고 작은 난관과 옆에 있는 조력자 덕분에 내 그릇은 전보다 훨씬 더 커진 것 같다. 지금 내 그릇이 크다는 말이 아니라 전에 얼마나 작고 좁았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사고의 확장은 공감되는 작업활동을 위해 꼭 필요했던, 해야만 했던 큰 과제가 아니었을까.
반면 그이는 농사에 관심이 있다고 했었다.
지금은 농사라는 생각에 변화가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 본질은 아마도 누가 웃으면 누구는 울어야 하는 시소놀이가 아닌 것. 그리고 말과 행동의 괴리감이 적은 삶의 추구로 추측한다.
그이는 그런 도시 생활에서 병들어감을 느꼈기에 그렇지 않으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애착 있는 ‘나의 일’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이가 농사든 유통이든 주도해서 한다면 나야 뭐 힘을 보태긴 하겠지만 여하튼 내가 작업실 밖에서 뭔가를 돌보고 키우는 일에 똥 손인 것은,
위의 사실로 인해 판명되었다.
나를 제대로 앎이 곧 행복 이리니.
내가 나를 괴롭히는 것만큼 슬픈 것이 없다.
시골은 나를 돌볼 총량과 공간 확보에 유리하다 생각한다. 이것저것 배우는 거 좋아하고 또 하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도시 여자는 그래서 시골에서도 살만한가 보다.
은는이가의 시골여행 유튜브채널에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