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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는이가 Apr 13. 2020

독일 플리마켓부터 시골 읍내의 고물상까지

그것들을 팔아서 내가 한 일.


삼 개월째 수입이 없는 보릿고개의 정상에서

내가 미용실을 다녀올 수 있었던 건,


사고파는 일에 취미가 있는 그이 덕분이다.


그이는 온라인 중고거래를 뛰어넘어 이제는 고철을 팔기에 이르렀다. 그이가 고물상에서 찍어 보낸 사진을 보니 집 짓고 남은 자재부터 낡은 개 줄에 고장 난 전자레인지까지, 꼼꼼히도 그러모았더라. (애석하게도 고물상에서 전기밥솥은 안 받았다고 한다.)


시골은 쓰레기 수거차량의 방문이 당연하지 않은 곳도 있는데 우리 마을이 그렇다. 그래서 우리 땅에 제 때 버리지 못한 고철이 많이 쌓인 것이다. 또한 그이는 오래된 컴퓨터 본체들을 주워 모으는 취미도 있기에 고철이 자꾸 늘어만 갔다. (쓸모 있는 하나가 되기 위해 본체 여러 개가 필요하다. 그 하나는 4만 원에 팔리기도 했다.)


물건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은 참 매력 있다.



고철을 팔아, 파마를 한 내가 다음날 간 곳은?

마을의 고추 모종 품앗이 현장.


고작 반나절 일 하고서 근육통에 사나흘을 정신 못 차렸다. 내가 일 해봐야 얼마나 하겠나. 그저 함께 하고자 한다는 마음만 비추고 미움받지 않을 정도만 깨작거리다가 중간에 빠져나와 작업실로 왔다. 그랬는데도 마을 어르신은 수고비를 챙겨주셨다.


밭 위의 사공들은 서로 이렇게 하는 게 맞다며 아웅다웅하시곤 했는데 서울 사투리를 쓰는 나는 남도의 표준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마치 외국인이 된 듯 대충 분위기로 짐작하고 따라 하기 바빴다.


그러는 중에 귀에 들어오는 단 한마디가 있었으니...

그것은 ‘Ja‘. Ja는 독일어로, 영어의 ‘Yes’에 해당하며 발음은 ‘야’라고 한다.


“야.   야야~”

어!? 독일어를!!?


어르신들의 입에서 발음된 ‘’라는 소리는 대화 흐름상 분명 ‘Yes’였다. 고추 모종을 덮은 비닐의 날개에 흙 한 삽을 퍼 얹으며 나 혼자 피식 웃는다.


그렇게 삽질하는 동안 난 잠깐 독일에 다녀왔다.




그이의 보물찾기 실력은 독일에서 빛을 발했다.


독일에서 사는 동안 그이는 토, 일요일마다 베를린의 크고 작은 벼룩시장을 두 세 군데씩 휩쓸고 다녔는데 그게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힘들어하는 나를 카페나 집에 데려다주고 혼자 다시 나갈 정도였다.


*벼룩시장은 독일어로 플로 마크트(Floh Markt), 영어로 플리 마켓(Flea market)이라고 한다.

벼룩시장의 판매자와 소비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더우나 추우나 건너뛰는 주말이 없었다.


5유로에 사온 이 렌즈는 한국에서 50만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그이가 카메라 렌즈 더미 앞에서 서성이는 동안


은 포크. 이거 팔면 얼마나 될까?

나는 안 사도 그만이라는 눈빛으로 매대 위의 물건들을 신속히 스캔한다.


보물 찾기는 그저 놀이 이므로 행여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라도 크게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한 품목당 5유로를 넘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러니까 그이의 카메라 렌즈는 대부분 5유로를 넘지 않았고 내가 찾아낸 은 포크 뭉치는 2 유로 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가 가진 거라곤 좋은 물건을 알아보는 안목과 뚜렷한 취향뿐. 당시의 내 마음은 지금보다 더 여유롭지 못했으므로 취미생활에 선뜻 주머니를 열지 못했다.


청바지 아저씨가 그이의 옷을 걸치고 만족해 하고있다.

독일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기 일주일 전,

살던 지역의 벼룩시장에서 입던 옷부터 시작해서 별의별 세간살이를 다 팔아 치웠다. 우리 물건은 저렴하기도 하고 상태도 좋아서 순식간에 동이 났다. 중년의 독일인 아주머니는 특히 주방용 빨간 고무장갑의 두께와 길이와 쫀쫀함에 감탄했는데 그것은 어머니께 부탁하여 택배로 받은 한국산 고무장갑이었다. 고무장갑의 밀도와 두께는 곧 그 나라의 가사노동 척도 같아서 국산이 좋다고 마냥 자랑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자릿세를 뺀 순 수익은 십만 원 남짓.

독일 생활은 이렇게 놀면서 마무리되었고 우리는 이틀 뒤 버스를 타고 체코로 갔다. (독일어라고는 상거래 언어만 유창해져서...)

저 때 번 돈은 체코에서 나흘간의 식비로 썼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이 많이 저렴한 데다가 대한항공 직항이어서 여행겸 괜찮은 귀국길이었다.



귀촌하여 생업에 올인한 지 1년쯤 지났을까.

벼룩시장에서 카메라 렌즈를 뒤적이다가 득템 하는 행복한 꿈을 종종 꿨다고 말하는 그이와 독일에서 아직 매듭짓지 못한 일을 빌미로 큰 마음먹고 다시 독일에 갔다.

독일어 Floh는 벼룩이라는 뜻.

‘보물찾기’를 테마로 둔 보름간의 여행은 벼룩시장을 최대한 많이 가기 위해 주말을 3번 걸치도록 일정을 잡았었다. 그때 찾은 보물은 최근까지도 그이의 중고거래 커리어의 일환이 되고 있다.


서울에 연고를 두고 시골에서 몇 년 굴러다녀본 나는 그이의 독보적인 커리어가 시골과 도시 사이에서  분명 빛을 발할 것이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나는

보물로 다듬는데 있어서 그이보다 한 수 위니까~^^




유튜브에서 영상으로 또 만나요~^^

https://youtu.be/_A_PMukm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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