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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는이가 Apr 27. 2020

비둘기의 뭉툭한 발목

시골에는 노숙자가 없다.

편의점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다가 빛깔이 독특한 어떤 비둘기를 유심히 보게 됐는데


세상에.
발이 없잖아!
게다가 한 다리로 서 있다니!!


그러니까 대리석 바닥을 딛고 있는 건 한 다리의 뭉툭한 발목이 전부인 것이다. 어쩌다 그리되었니......
그건 그렇고 네 균형감각 하나는 끝내준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좌우로 뒤뚱뒤뚱 이동한다. 학처럼 다리 한쪽을 접고 있던 거였다.
다행이다. 발목이 하나 더 있어서.


서울에 계시는 부모님을 뵙고 시골에 있는 우리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바쁘다.

횡단보도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다가 고개를 위로 들으니 높은 빌딩의 네모칸들이 쏟아지게 많다.


왼쪽 저 끝에는 집들로 덮혀있는 산이 있다.

서울을 벗어난 적 없던 나에게 발 없는 비둘기나 빌딩 숲, 빽빽한 집들이 새로울 풍경은 아닌데 이 풍경이 기이하게 느껴지다니...... 농촌 생활에 잘 적응하긴 했나 보다.

비둘기는 어쩌다 발을 잃었을까?
실 형태의 쓰레기나 구조물이 발목에 엉키고 조이는 바람에 발이 천천히 괴사 됐을 거라는 그이의 추측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비둘기는 발 없이도 불편함이나 고통은 없어 보였다.

엊그제 그이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보여준 어떤 사연이 생각난다.


회사에서 일을 못한다 타박을 받고 스스로도 그렇게 여겼던 A 씨. 매일 자책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출근을 했는데 어느 날 출장을 가게 됐다. 회사에서 해방된 기쁨에 즐거운 며칠을 보내고 돌아가자, 회사에는 A 씨 자리에 새로 뽑은 B가 와 있었다. A 씨를 출장 보낸 사이에 10년 경력자 B를 뽑은 것이다. 분노할 일이었지만 수긍하고 송별회도 하며 인수인계를 하는 중에 10년 경력자 B는 이 과중한 업무를 도저히 못할 것 같다고 관뒀다. 회사는 구인광고를 통해  다른 직원을 뽑았지만 역시나 못할 일이라며 또 관뒀다. 곤란해진 회사는 A 씨에게 다시 출근하라고 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저 회사를 비난하려다가 그 이전에 왜 A 씨는 과중한 업무를 자신의 무능함으로 여겼을까 의문이 든다.  

A 씨는 그이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했다. 부모님 세대는 물론이고 우리도 불공정을 당연하게 여겼다. 기분이 썩 좋진 않아도 반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개선하거나 떠날 생각 자체를 못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복종과 무기력을 학습했나? 다음 세대는 점점 개선해 갔으리라. 우리도 이젠 정당함을 알게 된 이상 다시는 부당함에 수긍이 안 되겠지.

비둘기는 왜 도시를 벗어나지 않았을까?
서울역의 노숙자는 왜 시골로 가지 않을까?
시골에는 왜 노숙자가 없을까?

 출처: 김필영의 [5분 뚝딱 철학]




한적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새의 집을 발견했다. 이 집 주인은 누굴까? 비둘기는 원래 깨끗하고 곱다는걸 시골에 살면서 알았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중에 고속도로 옆까지 아파트가 즐비하다. 한 집 크기의 땅을 수십 가정이 나눠 쓰는 건데 아파트는 왜 이리 비싼 걸까? 어디 아파트 매매가가 올라서 몇십억... 억억 하면 나는 액수의 크기가 가늠되지 않아 머릿속이 하얘진다.

내 관절이 뭉툭해지도록 연중무휴 평생 일한다 해도 마련하지 못할 방 두 개와 거실 하나다. 나도 남들처럼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숫자에 정말 소질이 없는 걸 어쩌겠나. 내 깜냥만큼 고통 없이 살다 죽고 싶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또 멀미가 난다.
다음엔 멀미약 준비하고 서울 가야겠다.
어서 집에 가자.

우리 개 고양이가 기다리는 시골집으로~





**일상의 단상을 영상에 담았습니다.

은는이가의 유튜브 채널에 놀러 오세요~^^

https://youtu.be/Y6tURlpQu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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