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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는이가 Jul 12. 2021

비 오는 날을 좋아하세요?

일과 놀이


    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비와 상관없는 상황 전제할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카페에 앉아 따듯한 커피를 마시며  오는  밖을 구경하는 . 빗소리를 들으며 아늑한 집에서 바삭한 부침개를 간장에  찍어 먹는 .


장마의 한가운데를 상상해보자.

비옷 안에 받쳐 입은 회색 면티가 진회색으로 적셔들고 있다. 내 겨드랑이와 앞섶을 적시고 있는 습기가 비옷의 봉재선을 파고드는 빗물인지 땀인지 분간이 안된다. 지금 당장 땀복 같은 비옷을 던져버리고 찬물로 샤워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내 마음대로 이 상황을 멈출 수 없는 입장이다. 그렇게 습기로 무거운 하루를 마감하고 드디어 비옷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땅의 습기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흙집에서 곰팡이와 사투를 벌이며 잠든다. 이 것이 비 오는 날의 전부라면 대부분은 비 오는 날을 좋아하기 어려울 것 같다.


비옷의 방수 기능에도 한계가 있다는 건 여기 와서 알았다.(비옷이 비옷이지 뭐 한계씩이나 생각해볼 건 뭔가?) 도시에 살 때는 비가 오면 안 나가거나 꼭 나가야 한다면 우산과 장화 정도면 충분하니까 비옷을 입을 일 자체가 별로 없었던 거다. 그러니까 비옷을, 그것도 방수 기능의 한계점을 넘도록 입고 있을 일은 평생을 털어도 몇 번 안됐을 거다. 이 말은 곧 그 전에는 비 오는 날 삽질할 일이 없었다는 얘기다.

시골에서는 비옷의 한계점을 넘길 일이 생각보다 많다. 여름과 가을에는 폭우가 쏟아지는 중에 물길을 낸다거나, 바람에 날아가려는 뭔가를 동여매 주거나, 쓰러진 작물을 일으켜 묶는 그러한 일로 비옷을 입곤 하는데 봄비에는 못 다 심은 모종을 심고 씨앗을 뿌리느라 종종 입게 된다.


초반에 흙이 얼마나 촉촉한가는 작물이 죽느냐 사느냐를 가르는 중대한 요소다. 밭일에 올인할 수 없는 나는 여기서부터 반은 죽이고 시작한다. 하여 비 오기 전날 파종하면 꿀인 것이다. 파종을 어제 했어야 했는데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라 골든타임을 놓쳤다. 시골에서 비 오는 날은 암묵적 휴일이다. 역시나 모두들 어제 일을 다 해두셨는지 비 맞으며 돌아다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농사에 늘 한 발 늦는 나, 그래도 하는데 까지 진행해본다.


파종할 자리를 만들기 위해 묵은 쪽파는 걷어내고 딱딱한 땅은 삽으로 뒤집었다. 땅이 이리도 넓은데 심을 자리가 없다니.. 참 신기하다. 아무튼 무릎까지 내려오는 비옷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목표한 일을 전부 마치긴 했다. 해냈다!! 만세!!!


밭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비옷을 내려놓으니 으슬으슬 한기가 든다. 비옷을 입었어도 등판과 어깨와 무릎이 큰 동그라미로 젖었다. 그 외에 작은 동그라미들은 내 땀이다.


휴~

그래도 최소한 땀인지 빗물인지 구별이 가능한 선에서 일을 마쳤다. 이 구별 가능한 선을 넘어야만 한다면 나는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 말할 것 같다. 이 선이 일과 놀이의 경계겠지?


엉덩이와 팔 근육이 기분 좋게 뻐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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