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는이가 Mar 14. 2021

안 먹을 완두콩을 심었다.

한 해 텃밭 농사의 시작, 완두콩

언제고 일어날법한
누구나 예견했을 사고일지도 모르겠다.



 완두 완두.. 이름마저 귀여운 완두콩알이 한 해 텃밭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쳤다. 완두콩 파종은 이번이 처음이다. 굳이 심으려 하지도 심지 않으려 한 것도 아니었는데 딱히 계기가 없어서 그렇게 됐다. 작년 여름인가.. 완두콩 종자가 얼떨결에 손에 쥐어졌다. "있는데 심지 뭐!" 콩을 잘 먹어줄 사람도 없어 심지 말까 했는데 담장 아래에 달리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심었다. 완두콩은 추위에 강해 11월부터 심어두기도 하니까 3월 10일에 심었으면 남쪽에서는 늦은 감이 있는 것 같다. 늦게 심었다고 큰일 날건 아니다. 남들보다 좀 늦게 수확할 뿐..


내가 심은 완두콩 종자는 원래 쁘띠 할머니가 수확하려던 완두콩이었다. 쌍꺼풀에 말려 올라간 긴 속눈썹이 인상적인 쁘띠 할머니는 작고 귀여우시다. 그래서 그이가 지어드린 예명이다. 쁘띠 할머니의 밭은 우리 집에 붙어있어서 파트너인 안경 할아버지와 함께 거의 매일 뵈었는데 작년 봄과 여름 사이쯤부터 웬일인지 안보이셨다. 쁘띠 할머니께서 넘어져 입원을 하셨다는 비보는 나중에 마담 JD통신원을 통해 들었다. 그 소식과 함께 내 손에 쥐어진 것이 빼빼 마른 완두콩이었다. 그때 마담과 같이 산책 나오신 교회 할머니는 쁘띠 할머니 밭에서 종자가 되어버린 완두콩을 챙기고 계셨다. 황색으로 건조해진 콩깍지를 보니 쁘띠 할머니의 90도로 굽은 허리와 불안정한 걸음걸이가 떠올랐다. 언제고 일어날법한 누구나 예견했을 사고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오랫동안 마을에서 뵐 수 없었다.


알뜰하던 밭은 순식간에 잡풀이 점령했고 함박눈이 소복이 내린 쁘띠 할머니 댁 마당에는 고양이 발자국마저 볼 수 없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 다시 봄이 왔다.

어제는 전기가 차단됐다는 안경 할아버지의 SOS 요청으로 그이가 댁에 들렀는데 누워계시지만 건강히  계시는 쁘띠 할머니를 뵈었다고 한다. 쁘띠 할머니 밭에 다시 완두콩을 심을  있길 바라며 내년에 돌려드릴 종자로써 완두콩을  키우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몸으로 익히는 ‘쑥대밭’의 어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