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옆에서 삶을 짓다.

삶과 죽음의 여과가 없는 곳에서

by 은는이가


2016년 가을.

날것의 시골 오일장

마침 오일장과 일요일이 겹쳐서 구경을 했는데 죽은 돼지의 얼굴을 실제로 보고 충격을 받았다. 곧이어 읍내의 마트에서 얼굴이 그대로 포장되어 있는 생닭에 또 놀랬다. 이것이 시골의 첫인상이었다.


살겠다는 강한 의지

그건 그거고 짜장면은 목구멍을 잘도 넘어갔다.

푸짐한 돼지고기 인심에 흡족한 식사였다.


시골 땅을 사고 처음 한동안은 일요일마다 찾아가서 임대한 임시숙소를 정리했는데

어찌나 짐이 많던지 이렇게 텅 비우는 데까지도 쉽지 않았다. 낡은 칼자루만 사십여 개가 나왔다면 나머지는 상상이 될까.

집안에 벌이 집을 지어 살고 있었다.


우리와 아무런 연고도 없고 뵌 적도 없는 어르신의 뒷정리를 하게 될 줄이야.

숙식하며 집을 지어야 했기에 이 방법 말고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자손들도 참 무심하지......


한 사람의 생을 정리하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던 친할머니의 집을 정리하면서 늘 죽음을 준비해야지 했었다. 뒷정리할 가족들이 고생스러우니까 모든 물건을 간소화하고 쌓아두지 말아야지. 내가 추구하는 미니멀의 초석은 아마도 죽음에서 비롯됐나 보다.


더불어 어떤 문제 앞에서 헤맬 때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정해보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지 선명해진다.



시골에서 땅을 매입할 때 피해야 할 열다섯 가지 조건 중에 무덤과 송전탑이 있는데 실제로 땅을 찾다 보면 이 두 가지는 애지간하면 포함될 것이고 무덤은 더 피하기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어딜 가나 보이는 무덤이 낯설고 볼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데 2년, 3년이 지나니 무덤이 있는 풍경이 자연스럽다. 피해야 할 혐오시설에 물음표가 붙을 정도이다. 우리들의 의식은 고정관념일 뿐인가 보다.


홍콩 여행 중 시내버스 밖에서 만났던 공동묘지가 떠오른다. 묘지가 빽빽한 것도 도심에 자리한 것도 이색적이었는데 더 의아한 건 바로 옆에 붙어있는 아파트촌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홍콩 사람들은 묘지 옆을 좋아한단다. 묘지는 대부분 명당에 있어서 묘지 옆은 당연히 좋은 곳이라는 인식이 있다는 것이다.


여긴 독일 남부 휴양지에서 만난 묘지.


어!? 그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같은데.

우리가 땅을 보러 시골 구석구석을 가보면 좋은 자리는 죄다 조상님이 차지했다며 탄식했었던 기억이 난다.


백구 눈치와 산책을 하다가 볕 드는 무덤 옆에 앉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눈치야, 우리는 얼마나 남았을까?”

눈치는 이듬해 7월에 우리곁을 떠났다.

죽음 옆에서 집을 짓고 있음에 이따금 미소가 지어진다. 죽음을 곁에 두는 것은 삶을 잘 살겠다는 것과 다름이 아니었던 거다.


눈치는 양지바르고 아늑한 배나무 옆에 묻어줬다.

그리고 눈이 펑펑 내린 오늘. 눈치를 꼭 닮은 염치와 산책을 했다.


“염치야,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까?”




삶과 죽음에 대한 단상을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https://youtu.be/JwZM7oTk-SY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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