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으로 끝나는 하루들. 이 연속을 끝낼 수 없을까?
수많은 직업 중 '직장인'을 택한 나. 1년 차 의욕과다를 지나 2년 차 알듯 말 듯 을 거쳐 3년 차가 되었다. 마음이 하나 둘 고장 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직장인 3, 6, 9 성장통의 법칙'을 내가 앓게 될 줄은 몰랐다. 반복되는 하루가 무료했을까? 전혀. 다이내믹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매일이 새롭다.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회사 생활에 지쳐 회사 밖 재미를 찾아 나서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그렇다면 워라밸이 문제였을까? 그것도 아니었다. 기가 막히게 정시 퇴근이 보장된 일은 아니어도 할 땐 하고, 쉴 땐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work & life balance'가 아닌 'work & life harmony'를 꿈꾼다. 삶 안에 일이 있고, 그 일로서 내 삶을 꾸려나갈 미래는 여전히 유효하다. 딱히 삶을 바칠 만큼 일이 미치게 재밌는 것도 아니었지만, 조금씩 깨지며 성장하는 내가 느껴질 때마다 짜릿했다. 동료들과 함께 결과를 냈을 때, 우리의 과정들이 인정받을 때마다 더 잘하고 싶었다.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럼 도대체 문제가 뭐야?
잘하고 싶었다. 그게 문제였다. 점점 스스로에게 주는 합격점의 기준이 까다로워졌다. '조금만 더'라는 말로 나를 몰아세웠고, 기준에 못 미치면 자책하는 일이 잦아졌다. 실제로 그렇게 했을 때 결과가 좋으니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중독됐다. 더 배우고 성장할 내일을 매일같이 그려보는 일이 즐거웠다. 퇴근 후에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끝까지 찾아봤다. 같은 일을 해도 다르고 싶었기에 모든 것에 힘을 주었다. '힘을 줄 땐 주고, 뺄 땐 빼야 오래도록 멀리 간다'는 누군가의 말이 그땐 전혀 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쨌든 나는 지금의 내 방식이 나를 키우고 있다고 느꼈고, 그것이 결과로 나타나니 이건 그냥 빼박 캔트 아니겠냐 싶었던 거다. 그렇게 나는 점점 뜨거워졌다.
나는 잘하면 안 되는 사람이어야 했다.
잘하고 싶었을 뿐인데, ’잘’은 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가 되어버린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 생각은 마음을 병들게 했다. 3년 차에 만난 '자존감 도둑 상사'가 나는 감히 이 마음의 원인이었다 하겠다. 그녀는 ‘너 때문에 내가 ~했잖아’식 화법 구사의 달인이었다. 실수를 해도, 성과를 내도 문제. 실수를 하면 그녀의 프로젝트에 피해를 주는 것이고, 성과를 내더라도 모든 것은 그녀의 덕분인 것이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나은 점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들켜선 안됐다. 이 미션의 가장 중요한 룰은 아무리 자그마한 문제도 깡그리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완벽한 그녀에게 흠결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 한 프로젝트에 묶여 있어 최소 2년은 함께 해야 했기 때문에 참는 것은 습이 되어갔다. 지렁이가 꿈틀 해봐야 관계만 흠집이 갈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쯤부터 일에서 어떤 성취감도 느끼지 못한 채 자꾸만 작아졌다. 잘하고 싶은데, 잘하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슬펐다. 못해야 인정받고 칭찬받았다.
출근에서 퇴근으로 하루가 끝나고 있었다.
그러다 가만 생각해보니 동기부여, 자존감, 관계, 성취. 내게 중요한 모든 감정을 퇴근 전으로만 몰아넣고 있음을 깨달았다. 퇴근 후에도 회사 안에서의 일들로 고민했고, 그 감정들이 하루를 지배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퇴사를 택하고 싶진 않았다. 일은 여전히 재밌고 잘하고 싶었고, 회사는 이를 꿈 꿀 수 있는 곳이었다. 사랑해 마지않는 이 조직을 조금 더 건강하게 다니고 싶었다. 느닷없이 억울했다. 나를 이루는 수많은 덩어리 중 하나가 회사인 거지 회사, 일, 회사생활이 곧 나인 게 아닌데. 밸런스든 하모니든 간에 분명 내 하루의 주인공은 내가 아닌 워크였다. 끌려다니고 있는 듯한 느낌이 영 별로였다. 한 걸음 물러서서 드라이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퇴근 후엔 우리, 잠시만 헤어져요.
'잠깐. 하루는 눈 뜨고부터 잠들 때까지 아냐? 출근부터 퇴근까지가 아니잖아.' 새삼스러웠다. 동기부여, 자존감, 관계, 성취. 여전히 내게 중요한 키워드들이다. 하지만 꼭 회사에서’만’ 해당되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회사 말고,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 필요했다. 회사가 아니어도 내 마음을 건강하게 채워갈 수 있는 환경. 일 말고 완전히 새로운 일과가 필요했다. 일이 아니어도 내 삶의 키워드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들. 퇴근 후에도 내 하루는 여전히 진행 중이니까. 퇴근 후엔 회사와 잠시 안녕. 내 하루를 채우는 건 회사만이 아니란 걸 내게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바로 행동에 옮겨야겠다고 다짐했다.
제대로 퇴근하는 법을 배우고야 말겠다는 다짐.
3년 차 직장인에게 불쑥 찾아온 성장통을 건강하게 보내보자는 결심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