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띠에서 노란 띠로 레벨 업!
지난주 사범님이 '다음 주에 승급심사 있습니다.'라는 짧은 말로 통보해주신 이후 '이를 어쩐담'의 연속으로 며칠을 보냈다. 이렇게 짧은 한 마디로 승급심사가 결정되는 것이었다니! 알고 보니 그 정도 실력이 되었다고 판단해서 심사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두 달 동안 수련한 모든 이들에게 다음 레벨로 넘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거였다. 회사에도 없는 레벨업 심사를 태권도에서 보게 되었다니. 내 인생을 좌우하는 심사는 아닐지라도 묘한 긴장감이 들었던 이유는 이렇다.
누군가에게 '평가' 받는다는 기분. 그리고 그 평가로 인해 내 다음 단계가 '결정'된다는 사실. 이 기분과 사실은 회사에서도 늘 느껴왔던 감정이 아니었나 싶었다. 내가 내놓은 결과물에 대해 모두가 좋은 '평가'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내 역량이 '결정'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하나하나 완성해 나간다는 생각이 아니라 한 번에 모든 걸 이루고 싶은 욕심이 더 컸던 것은 아닐지. 첫 술에 배부르고 싶으니까 배부르기엔 부족한데 싶으면 머리에 마음에 무언가를 억지로 욱여넣기 바빴고, 그러다 결국 체해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참 묘하다 생각하며 그동안 배운 것들을 복기하며 승급심사를 준비했다. 두 달 동안 앞차기, 나란히서기, 앞굽 서기, 지르기, 아래막기, 얼굴 막기 등 기본 동작을 배웠고, 준비운동 시간에 꾸준히 연습했다. 그리고 사범님과 유품자 선배님들을 따라 태극 1장의 동작을 하루하루 조금씩 배워 완성했다. 이 모든 것들을 사범님의 리드 없이 혼자 완료해야 했기 때문에 출퇴근길에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봤다. 1장이 조금 불안했지만 내겐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1장은 임금 왕(王) 자를 그리면 된다.'는 것! 이거 하나만 기억하자!
도장에 도착하니 한편에 송판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승급심사를 알리는 일종의 아이템인가 생각하며 몸을 풀었다. (설마 이 중 한 장을 내가 깨부숴야 할 거라곤 생각 못했다.) 승급심사 날도 예외 없이 준비운동을 했다. 준비운동을 마치고 레벨 순으로 앉았다. 정말 초 긴장 상태! 이 날은 나만 단독 승급심사가 있었다. 유품자들은 이제 국기원에 가서 품을 올릴 때만 심사를 받기 때문에 흰 띠에서 노란 띠로 레벨 업 해야 하는 나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앞으로 나가 선배님들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승급심사는 시작된다. 선배님들의 우렁찬 박수와 함께 기본 동작을 이어갔다. 사범님의 구령에 맞춰 그에 해당하는 동작을 정확히 선보여야 했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 같은 느낌이 왜 그렇게 민망하던지. 기본 동작을 마치고 드디어 태극 1장! 비장의 한 마디를 계속 생각하며 무사히 임금 왕(王) 자를 그려냈다.
마지막 기합 '으어이!!!'까지 마치고 동작을 멈춘 채 부들부들 한참을 서있다가 드디어 떨어진 사범님의 '바로!' 구령에 자세를 고쳐 바로 서자마자 박수를 받았다. 세상에! 나 이렇게 뿌듯해도 되는 건가! 하자마자 송판 격파가 이어졌다. '아... 이거 내가 깨부숴야 하는 거였구나.' 그런데 세상에! 첫 지르기에서는 격파에 실패했다. 야심 찬 주먹질에도 송판은 깨지지 않았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손가락 뼈에 빗겨 맞았기 때문이다. 사범님이 타이밍에 맞게 송판을 구부려주시려는 걸 눈치챘지만 그러기엔 내 주먹질이 합을 너무 못 맞춘 거지. 여기서 정말 세상에! 였던 것은 격파에 '실패'했는데도 박수를 받았다. '괜찮다! 할 수 있다! 다시 해보자!'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다음 시도는 성공. 빠각! 하고 부서지는 송판에 장난 아닌 쾌감을 느끼며 승급심사를 마무리했다.
무사히 첫 승급심사를 마치고 노란띠를 건네받았다.
작은 성공의 경험을 하나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존을 채워주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이 작은 조각들을 모은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더 큰 것을 이룰 수 있는 힘을 키워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