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그중 20분이 준비운동이고 사실상 기본 동작 자세나 품새를 배우는 건 30분 남짓이다. 비율로 치면 준비운동 40% 본 운동이 60%인 셈이다. 아니, 준비운동을 20분 씩이나 하다니. 적어도 내게 이 20분은 ‘씩이나’였다. 얼른 본 게임에 들어가고 싶어 죽겠는데! 수업시간의 40% 씩이나 할애하는 준비운동이란 이런 것이었다. 도장을 있는 힘껏 가로질러 뛰어 왔다 갔다 하기, 고깔 개수를 하나씩 늘려가며 조금 뛰고 조금 멀리 뛰고 더 멀리 뛰기, 사다리 끈을 바닥에 놓고 발을 요리조리 교차하며 뛰기 등등 계속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다리 찢으며 뛰고 뒤로 뛰고 옆으로 뛰고. 세상에... 살려주세요 사범님. 걷는 것도 귀찮아 기계 몸을 맡기던 하찮은 체력의 나는 아이들이 힘든 기색 없이 뜀박질을 계속할 때에도 끊임없이 숨을 고르느라 바빴다.
수업의 루틴은 이렇다. 늘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유산소 준비운동 20분, 지르기와 발차기 기본 동작 1세트 후, 가장 낮은 레벨의 진도에 맞는 품새를 배운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해당 품새를 연습할 동안 나머지 인원은 그다음 품새를 연습하는 식이다. 물론 여기에서 그 사람은 나뿐이다. 처음엔 내가 초보라서 몸을 풀어야 하니 그런 건가 싶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록 준비운동 20분, 기본 동작 1세트 루틴은 변함이 없었다. 한 달 동안 최소 주 3회 이상은 도장에 나갔으니, 이 정도면 그래도 처음 보단 훈련이 된 것 같은데 준비운동 시간은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 거다. 알고 보니 내 레벨 때문이 아니었다. 1품 선배님부터 3품 선배님까지. 몇 년을 다녔건 매일 같은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세상에. 정말 세상에다. 어째 태권도는 세상에의 연속인 것 같다.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하며 꾸준함으로 조금씩 기본을 다진 거다. 준비운동으로 기초 체력을 다지고, 모든 품새의 시작이 되는 기본 동작으로 자세를 바로 세우는 것. 한 방에 품새 진도부터 팍팍 나가고 싶었던 마음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그건 일과 태권도 모두 해당되는 것이었다. 어쩌면 일을 하면서도 조급함 때문에 스트레스가 되었던 적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이제 고작 3년 차 직장인인 내가. 알아봐야 얼마나, 잘해봐야 얼마나였겠는가 말이다. 나는 늘 내가 잘하고 싶다는 마음 덕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건강한 욕심이었다는 착각. 기본을 제대로 다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과정인 줄도 모르고. 그 착각은 마치 눈 뜨면 검은띠가 쥐어지는 줄 아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생각들은 아니었는지 곱씹게 되었다.
되려 회사와 일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 마냥 고민 우물에 빠져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자극으로 새로운 생각의 조각들을 맞춰가는 방식으로. 신기했다. '아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하고 잠들어버리는 식으로 회사 생각을 끊어내는 것보다 이렇게 재조합하며 원래 그러하다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앞으로 태권도가 내 하루에 어떤 자극들을 가져다줄지 점점 기대가 되었다. 준비운동의 비밀을 깨닫고 나서 내 안에 새긴 한 문장.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나 결과가 없더라도 조금만 가볍게 생각하기.'
꾸준함도 실력이니까.
기본은 절대 무너지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