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밖에서 '동기부여, 자존감, 관계, 성취'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아.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시도조차 해본 적 없었던 것. 나 스스로 만든 ‘생각’이지 ‘사실’은 아니었음을 증명해보고 싶었다. 해 보고 진짜 별로면 그건 정말 별로인 거겠지만 해보지도 않고 판단했던 것들을 감히 부숴보고 싶었다. 난 운동 핵 불호 와식형 인간이었다. 고작 2층짜리 사무실도 사람이 없으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침 지하철 지각 위기에 처해도 긴 줄을 견뎌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인내심 끝내주는 인간. 그래. 운동 한 번 ‘해보기나 하자’고 결심했다. 매일 같이 숨 쉰 채 발견되던 내가 운동이라니 도저히 못하겠다 싶어 그만두더라도 건강은 남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었다.
오랜 시간 수련해야 하는 것은 곧 단계가 있다는 것이고, 하나하나 이뤄갈 때마다 작은 성취감의 연속이겠다 싶었다. 아무리 해도 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았던 그때의 좌절감을 상쇄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달까. 회사 밖 작은 성취들로 내 마음을 다독여주고 싶었다. 필라테스, 합기도, 수영 등 많은 후보들을 떠올렸다. 내가 이런 것들을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벌써 웃겼다. 꼼지락꼼지락 고군분투할 것을 생각하니 새롭긴 하겠다 싶었고.
내 선택은 태권도였다.
태권도를 택하게 된 이유? 흰 띠에서 시작해 매 월 심사를 거쳐 색색의 띠들을 바꿔가며 렙업 하다 결국 검은 띠를 쟁취하고야 마는 과정이 괜히 멋있게 느껴졌다. 노란 실 자수로 내 이름을 박은 검은 띠도 갖고 싶었다. (이 때는 몰랐다. 1년 7개월이나 걸릴 줄은.) 내가 흥미도 없는 피아노 학원에서 포도알이나 색칠하고 몰래 도망가던 어린 시절. 태권도장을 다녔던 남동생은 품띠를 땄고 방에는 아직도 그때 사진관에서 한껏 폼 잡고 찍었던 호랑이 배경의 기념사진이 걸려있다. 그 옆에 내 사진이 걸린다면? '그래! 목표는 검은 띠다. 기념으로 사진도 찍을 거야.'
지나가다 본 것 같은 태권도장이 떠올랐다. 성인 전용 태권도장인지 어떤 식으로 운동하고 수련하는지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대뜸 전화부터 했다.
“저... 운동 상담받아보고 싶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아, 네~ 어머님~ 아이 몇 학년이실까요~?”
'어머님' 소릴 듣고 멈칫했던 1-2초 동안 수화음 너머로 서로의 머쓱함이 공기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래 뭐, 이상할 것도 없지. 태권도장에 초등학생 아이를 보낼만한 나이이긴 하니까.
“^^;; 아뇨, 제가 하려고 하는데 혹시 성인은 안 받으시나요?”
“아이고! 네네 일단 내일 도장으로 오세요~”
“제가 직장인이라... 저녁에 가도 되나요?”
“네~ 내일 뵙겠습니다~”
다음 날 온몸에 머쓱함을 가득 안고 찾아간 도장에서 나는 등록, 결제, 도복과 띠 구입까지 모든 걸 마쳤다.
이렇게, 하루가 회사뿐이던 3년 차 직장인의 퇴근 후 태권 라이프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