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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배 + 우리 할매 = 나의 삶

너는 딸이 아니라, 손녀야.. 손녀의 도리만 하면 돼..

by 이하나
우리 할배와 할매... 나의 돌잔치

내가 혼자서 일본으로 오고 나서, 쭈욱 마음 한가운데 자리 잡은 감정은 미안함과 죄책감이었다. 앞 선 글 중에 언뜻언뜻 언급했지만 나는 우리 할매를 버리고 일본으로 왔다. 주변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는 손녀일 뿐이라고... 자식이 아니라고... 그러니 손녀의 도리만 하면 된다고. 자식의 역할은 아버지가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그래서 오늘은 내가 우리 할배, 할매와 나의 관계가 단순한 조부모님과 손녀의 관계가 아니라는 내용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나는 정확히 말하면 음력 1982년 12월 29일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서 태어났다. 나를 낳아주신 엄마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아팠기 때문에 임신을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임신을 하지 않으면 3년, 임신은 해도 아이를 건강하게 낳고, 본인도 살 수 있는 확률은 거의 0%,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가지게 되었고, 엄마는 "저 식물도 저렇게 자라나서 씨앗을 세상에 뿌리고 가는데, 나도 사람으로 태어나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무언가는 남기고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겨우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나를 낳아주신 엄마는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끝까지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이렇게 일을 벌이고 죽으면 뒷감당은 누가 하냐고... 결국 엄마는 나를 택하셨다. 결혼하고, 나를 임신하면서 급격히 엄마의 상태는 나빠졌고, 집에서 신혼생활은 한 달도 하지 못한 채 출산 때까지 병원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8개월 만에 1.9kg으로 태어났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가게 되면서 결국 엄마는 나를 한 번도 안아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당시만 해도 의료시설이 지금처럼 발달되지도 않았고 병원에서도 [이 아이는 인큐베이터에 있어도 얼마 살지 못한다]라고 했단다. 돌아가신 엄마의 친정 쪽에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나를 키울 수 없으니 시설에 보내든지 알아서 해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 할매는 인큐베이터에 있어도 얼마 살지 못한다고 하니 죽든 살든 키워보자고 나를 집으로 데려가셨다고 한다.


병원에서 나를 퇴원시키고, 집으로 데려오고 나서부터 우리 할배, 할매는 어떻게든 나를 살리려고 많은 노력을 하셨다고 한다. 100집을 돌아다니면서 쌀을 받아서 절에 올리면 명이 길어진다는 노스님의 말씀에 추운 겨울에 그 작은 나를 업고 100집을 돌아다니시면서 쌀을 받아서 절에 올리셨고, 몸에 좋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다 먹이셨다. (친척분들은 그때 먹은 약발이 지금에서야 받아서 저렇게 살이 찐 건 아니냐는 농담을 하실 정도로 나에게는 지극정성이셨다.) 그렇게 내가 태어나고 1년 넘 짓 지났을 때 아빠는 지금의 엄마를 만나 재혼을 하셨고, 다른 지방으로 가셨다. 그때 새엄마한테 구박받을까 봐 우리 할매가 자신이 키우겠다고 하셨단다.(할매한테 들은 얘기로는 결혼하고 얼마 안돼서 할매가 마당에 있는데 내가 자지러지듯이 울더란다. 그래서 얼른 들어갔더니 내가 넘어가면서 울고 있고, 엄마는 말을 안 들어서 엉덩이를 한 대 때렸다고 했단다. 얼른 바지와 기저귀를 벗겨보니 손자국이 벌겋게 나있었다고 한다. )


우리 할배는 매일 나를 안고서 자기로 된 장롱에 있는 달을 두드리며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 어디 어디 떴나.... 우리 하나한테 떴지~"라고 맨날 노래 불러주셨고,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다 해주려고 하셨다. 그런 우리 할배 사랑을 막는 존재는 유일할 우리 할매.... 부모 없이 자란다는 소리 안 듣게 하려고 회초리도 많이 드셨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나를 때리신 적은 없다. 매번 매를 맞는 건 아무 죄도 없는 방바닥.... 방바닥에서 나는 회초리 소리 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울고불고 잘못했다고 했단다. 유치원 때도, 초등학교 때도 운동회날이 되면 할머니가 어김없이 출동했고, 웬만한 친구 엄마들보다 엄마들이 참가 하는 게임에도 참가하셨고, 늘 나의 자랑이 되어주셨다. 초등학교 때, 학교 버스를 타는 곳까지 학교 가방을 메고 가는 것도 키 안 크면 안 된다고 늘 가방을 들어다 주셨던 우리 할배, 할매.... 새벽에 열이 40도 가까이 오를 정도로 아프면 새벽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 응급실로 내달렸던 것도 우리 할배, 할매... 학교에서 부모님 참관 행사가 있을 때 참가했던 것도 우리할배, 할매... (부모님과 같이 살게 된 고등학생이 됐을 때까지 새벽에 열이 나서 응급실에 갈 때 보호자로 같이 갔던 것도, 학부모 상담에 참가했던 것도 다름 아닌 우리 할배, 할매... ) 부모님과 다른 것이 무엇일까?


나에게는 우리 할배, 할매가 그 어떤 부모님보다 더 좋은 부모님이 되어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는 나에게 조부모님이지만, 그것 이외의 모든 것에서 두 분은 나의 부모님이자 나의 삶 그 자체이다. 그래서 살아계신 우리 할매에게 내가 집착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무 할매와 나를 동일시한다고.. 그래서 할머니가 느껴야 하는 감정을 본인이 느끼고, 힘들어한다고... (아빠가 할매한테 하는 행동이나 말들이 나는 너무 밉게만 보이니까....)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나는 아직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가고, 할매와의 이별을 하루하루 더 다가온다. 할매와의 이별을 이제는 조금씩 준비해야 한다고 주변에서 다들 얘기하는데 나는 이별을 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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