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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나 Sep 01. 2024

우리 할배 (1)

나의 할아버지이자 나의 아버지

누군가 나에게 이상형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우리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1.9kg의 미숙아로 태어났고, 엄마의 품에는 한 번도 안겨보지 못하고 인큐베이터에서 생활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나를 낳고 엄마는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다.

외갓집(돌아가신 엄마의 친정)에서는 나를 키울 수 없으니 시설로 보내든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 나를 애지중지 키워주신 분 중 한 분이 우리 할아버지.. 나는 할배라고 불렀다.


우리 할배는 공무원이셨다.

늘 양복차림에 집에서 쉬는 날조차 긴 면바지에 폴로셔츠 차림...

늘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을 하고 계셨다.

오죽했으면 동네 할머니들이 우리 할배만 보면 영국신사라고 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할아버지의 스타일을 유지하기에는 늘 다림질해서 옷을 챙겨주신 우리 할매가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짐작이 간다...


우리 할배는 굉장히 고지식적이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분이라고 말할 정도로 반듯한 분이셨다.

평소에는 말도 잘 없으신 분이 술 한 잔 하셨을 때는 자고 있는 나를 깨워서 꼭 뽀뽀를 하시고는 하셨다.

한 밤중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하면 잘 준비가 다 된 시간에도 한달음에 슈퍼로 달려가셨고,

피자가 먹고 싶다고 하면 패스트푸드점에는 가 본 적도 없으신 분이

퇴근길에 피자집에 들러서 피자를 사다 주셨고, 심지어 좋아하는 가수 노래 카세트테이프도 사다 주셨다.

우리 할배 성격에 얼마나 무안하고 겸연쩍으셨을까....


그런 우리 할배는 공무원을 정년퇴직 하시고도 움직일 수 있는 동안에는 사람이 일을 해야 한다며

세계전집 방문판매원, 건물 경비원 등의 일을 계속하셨다.

나름 공무원 중에서도 높은 직급으로 퇴직하실 우리 할배가 이런 일을 하셨다는 것이 나는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자립적인 생활을 못하는 아들 때문에 자존심을 접고 생활전선에 뛰어드신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생각난다...

할배가 돌아오는 시간만 되면 그 길가에 서서 할아버지가 오늘은 뭘 사 오나 하고 기다렸던 내가...

할배가 살아계실 때는 중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몰랐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나에게 얼마나 큰 공포감을 주는지... 그리고 그리움이 나날이 쌓여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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