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아버지이자 나의 아버지
누군가 나에게 이상형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우리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1.9kg의 미숙아로 태어났고, 엄마의 품에는 한 번도 안겨보지 못하고 인큐베이터에서 생활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나를 낳고 엄마는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다.
외갓집(돌아가신 엄마의 친정)에서는 나를 키울 수 없으니 시설로 보내든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 나를 애지중지 키워주신 분 중 한 분이 우리 할아버지.. 나는 할배라고 불렀다.
우리 할배는 공무원이셨다.
늘 양복차림에 집에서 쉬는 날조차 긴 면바지에 폴로셔츠 차림...
늘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을 하고 계셨다.
오죽했으면 동네 할머니들이 우리 할배만 보면 영국신사라고 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할아버지의 스타일을 유지하기에는 늘 다림질해서 옷을 챙겨주신 우리 할매가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짐작이 간다...
우리 할배는 굉장히 고지식적이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분이라고 말할 정도로 반듯한 분이셨다.
평소에는 말도 잘 없으신 분이 술 한 잔 하셨을 때는 자고 있는 나를 깨워서 꼭 뽀뽀를 하시고는 하셨다.
한 밤중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하면 잘 준비가 다 된 시간에도 한달음에 슈퍼로 달려가셨고,
피자가 먹고 싶다고 하면 패스트푸드점에는 가 본 적도 없으신 분이
퇴근길에 피자집에 들러서 피자를 사다 주셨고, 심지어 좋아하는 가수 노래 카세트테이프도 사다 주셨다.
우리 할배 성격에 얼마나 무안하고 겸연쩍으셨을까....
그런 우리 할배는 공무원을 정년퇴직 하시고도 움직일 수 있는 동안에는 사람이 일을 해야 한다며
세계전집 방문판매원, 건물 경비원 등의 일을 계속하셨다.
나름 공무원 중에서도 높은 직급으로 퇴직하실 우리 할배가 이런 일을 하셨다는 것이 나는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자립적인 생활을 못하는 아들 때문에 자존심을 접고 생활전선에 뛰어드신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생각난다...
할배가 돌아오는 시간만 되면 그 길가에 서서 할아버지가 오늘은 뭘 사 오나 하고 기다렸던 내가...
할배가 살아계실 때는 중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몰랐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나에게 얼마나 큰 공포감을 주는지... 그리고 그리움이 나날이 쌓여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