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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팅이 내 동생

38년 만에 알게 된 출생의 비밀....

by 이하나

나에게는 3살 차이나는 남동생이 있다. 지금의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 집안 환경 때문인지 집에서는 유독 말수가 적어지고, 방에서도 잘 나오는 일이 없던 동생은 4년 전 결혼했고, 지금은 아들 한 명을 둔 한 가정의 가장이다.


동생과 함께 살게 된 것은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 다른 집들을 보면 남매 사이라도 많이 싸웠다고들 하던데 나와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떨어져 지내서인지 딱히 싸운 기억은 없다. 그래도 한 번씩 부모님과 함께 부산으로 올 때면 내 뒤를 졸졸 쫓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동네 친구들 몇 명이 나에게 달려들자, 우리 동생이 타다닥 뛰어오더니 그 조그만 손으로 주먹을 쥐고 " 우리 누나 괴롭히면 한 방이면 끝나!"라고 해서 주변 어른들이 당황해서 말렸던 적도 있었다. 한 방이면 끝난다니.. ㅋㅋㅋ 아이고.. 동생아..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빠의 술주정이 있을 때마다 둘이서 손잡고 화장실이며, 세탁실로 들어가 울면서 경찰에 신고를 하기도 했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가 나를 낳아주신 분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고, 당연히 동생 또한 엄마가 같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동생은 엄마가 낳은 아이라 함께 살고, 나는 그렇지 않아서 할배, 할매와 같이 산다고 생각해서 동생이 마냥 부러웠었다. 그래서 나는 동생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아놓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 아빠가 된 동생은 가끔 술에 취하면 카톡으로 영상통화를 걸어온다. 아빠가 예전 같지 않다며... 누나가 한국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그런 동생에게 한 번은 펑펑 울면서 말한 적이 있다. 너는 너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지 않았냐고... (실제로 동생은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은 아빠와 싸우면서라도 하고 살았다. ) 나는 내가 지금 좋아하는 게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나도 예전에는 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다고... 그러자 동생은 "그건 누나가 잘못한 거지~ 하고 싶은 걸 왜 안 하고 살았노..."라고 대답했다. 그때 나는 <너와 나는 상황이 다르다고, 너는 엄마가 있지만, 난 엄마가 없지 않냐고... 그래서 난 착한 아이, 인정받는 아이가 되어야 했다고... 버림받기 싫었으니까...>라고 말하고 싶은걸 꾸욱 참고, 엉엉 울면서 "나는 할매 돌아가시면 아빠, 엄마는 물론이고 니랑도 인연 끊고 살 거다!"라고 얘기했었다.


38년이 지나도록 곰팅이 내 동생은 이런 상황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바부팅이 같으니라고... 그런데 9월에 내가 본가를 갔을 때였다. 동생네 가족이 본가로 모이고 식사와 함께 반주도 곁들여졌다. 그러다가 아빠와 동생이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갔고 한참 동안 들어오지 않았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들어온 아빠가 나에게 슬쩍 "얘기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엥? 뭘? 내가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몰라 "뭘 얘기했는데?"라고 묻자 "엄마 얘기..."라고 답하는 것이다.. 헐.... 갑자기?? 이 상황에? 이제서야? 왜?? 뒤따라온 동생을 쳐다봐도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


그날 이후 동생으로부터 아주아주 가끔 오는 카톡내용에는 변화가 생겼다.. 말끝마다 누나야..라고 붙인다는 것이다. 38년 만에 밝혀진 너와 나의 출생의 비밀에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끝마다 누나야...라고 불러주는 동생.. 진짜 어른이 됐나 보다... (맨날 나한테 누나보다 결혼도 먼저 하고 애도 있으니 내가 누나보다 어른이거든.이라고 얘기하더니..) 내 동생 곰팅이... 누나야..라고 안 붙여도 니 누나 맞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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