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걸 메고 뛸 수 있을까?
올해 7월 일본에 대지진이 올 거라는 말들이 자주 들려온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지진 당시에는 한국에서 생활을 했던 터라 아직 큰 지진을 경험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진도 3, 4 정도의 지진은 자주 있는 편인데, 처음에 일본에 왔을 때는 잠을 자다가 지진이 오면 티브이부터 틀었다. 지진속보를 듣다가 쓰나미 경보 해지와 같은 뉴스를 듣고 난 후 다시 잠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는 웬만하게 흔들려서는 또 흔들리나 보다... 하고 핸드폰으로 잠시 상황을 확인하고 다시 잠에 든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지진을 겪은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도쿄는 직접적인 피해가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물건도 살 수 없었고, 물 같은 것도 구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아주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만 간단하게 백팩에 넣어두긴 했었다. 그러다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조금씩 방재굿즈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큰 등산용 가방에 3일 치 보존식량(6년간 보존가능 한 오니기리와 비스킷), 식수 1.5L, 움직이기 편한 갈아입을 옷, 물티슈 등등... 그중에서 제일 신경 써서 고른 게 침낭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목재건물이고, 재난상황이 발생하면 대피소로 이동하게 되어있다. 대피소에서 3일 정도 어떻게든 보내고 나면 국가나 민간단체에서 지원물품이 도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3일 동안 지낼 준비를 해야 했다. 걱정병인 내가 준비를 하다 보니 이것을 넣고 나니 저것도 필요할 것 같고.. 점점 짐이 늘어났다. 특히 대피소에서 지내는 동안 잠자리가 불편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일본 지진 때 박스를 주워다 깔고 자기도 했다고 해서 침낭은 꼭 필요할 것 같았다.
오늘 드디어 나의 재난(방재굿즈) 가방이 완성되었다. 물론 저 가방을 쓰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지만, 저 가방만 있으면 3일이 뭔가 일주일도 보낼 수 있다!(물은 좀 더 필요할지도 몰라서, 휴대용 정수기를 장만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이것저것 넣다 보니 가방이 너~~ 무 무겁다.. 이런.... 이걸 메고 절대로 뛸 수 없다. 걷기만으로도 벅차다. 그래서 다시 짐을 다 꺼내고 필요 없는 게 있는지 다시 확인했지만 저 가방에서 단 하나의 물품도 뺄 것은 없었다. 에잇! 뭐... 어쩔 수 없지.. 가볍게 준비하면 혹시나 재난시 필요한 물건들이 많을 테고, 그것보단 좀 무거워도 저렇게 준비해 놓는 게 내 마음이 편하니...
마지막으로 준비해야 될 것이 두 가지 남았다. 그중 하나는 공중전화 카드... 핸드폰은 통신망이 마비가 되어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공중전화를 이용해서 안전확인 연락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일본은 아직도 곳곳에 공중전화가 있고, 편의점에서 공중전화 카드를 팔고 있다. 다른 하나는 동전.... 재난시 슈퍼나 편의점에서 카드나 전자머니를 사용할 수 없고, 물건도 금방 없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동전이 있으면 자판기를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조금씩 모으고 있다.
여권, 도장, 약수첩(일본에서는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고, 약국에서 약을 타면 약수첩에 스티커로 어떤 약을 처방받았는지 붙여준다. 그러면 다른 병원을 간다던지 할 때 참고가 된다.) 등은 파우치에 넣어서 꺼내지 쉬운 곳에 넣어두었다.
무엇보다도 누군가의 희생과 피해가 발생하는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재난이 100%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준비는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도... 너무 많이 넣었나.....? 너무 무겁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