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있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나를 낳아주는 엄마는 심장병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아빠와 결혼을 하고, 나를 가지게 됐을 때 나를 포기하셨다면 3-4년은 더 사셨을 거라고 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하다못해 동물들도 죽기 전에 자기 새끼를 낳는데, 나도 이 세상에 살다 갔다는 내 분신을 남기고 싶다."라고 했단다. 난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세상에 이보다 이기적인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그런 감정이 남아있다. 책임지지 못할 거면 그 아이는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아가라는 말인가....
나는 8개월 만에 1.9KG의 미숙아로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 있었다. 나를 낳은 엄마는 결국 나를 한 번도 안아보지도 못하고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병원에서도 이 이아는 1년 이상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고, 엄마 쪽 가족들은 나를 책임지고 키울 수 없으니 시설에 보내던지 해라고 했단다. 그런 나를 죽든 살든 키워보자고 집으로 데려와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도록 키워준 분이 우리 할매와 우리 할매다.
아빠의 술문제로 인한 가정폭력도,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것도, 가족들이 불행한 것도.. 모든 원인은 나라고 생각했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도 좀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르고, 아빠도 나를 보며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지 않았을 테고, 그럼 가족들도 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런 죄책감과 함께 왜 나에게 이런 상황을 겪게 하냐면서 나를 낳아주신 엄마에 대한 원망이 점점 더 커졌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나를 낳아주신 엄마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어떤 분이었을까? 살아계셨더라면 나를 많이 사랑해 주셨을까? 할매나 아빠에게 직접적으로 엄마에 대해 물어볼 순 없었다. 왜인지 물어봐서는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친척분 중 고모할머니의 아들(아빠의 외사촌), 나는 삼촌이라고 부르는 그분께 가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묻어보면 삼촌은 엄마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해 준다. 참 인정이 많고, 털털한 성격에 애교도 많았다고 한다. 몸이 많이 안 좋은 상태에서도 연탄불을 갈 때가 되면 어김없이 연탄아궁이로 갔고, 할매가 들어가라고 해도 괜찮다고 하며 같이 연탄불을 갈기도 하고, 아침에도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주방에서 아침준비를 했다고 한다.
작년에 입원했을 때 같은 병실에 있던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엄마에 대한 원망을 이야기했을 때 한 분이 "엄마는 자기 목숨보다 네가 더 소중했으니까 너를 낳았고, 누구보다 사랑했을 거야. 그리고 네가 행복하길 누구보다 바랄 거야. 네가 엄마가 되어보면 그 맘을 알게 될 거야..."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순간 왜 그런지 눈물이 한없이 났다. 나는 내가 행복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목숨대신 살았으니까.. 그런 나에게 행복해져도 된단다. 내가 행복해지는 게 돌아가신 엄마도, 나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신 우리 할배, 할매도 가장 바라는 것이라고...
요즘도 엄마 손을 잡고 길을 가는 아이들을 보면 한없이 부럽고, 어쩔 때는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나도 뭔가 달라졌을까?? 우리 할배, 할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사랑도 받았으면 좋았을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를 낳아주신 엄마에 대한 원망보다는 엄마에 대한 궁금증이 나날이 늘어간다. 유일하게 흑백으로 조그만 크기고 남아있는 엄마의 사진이 한 장 있다. 영정사진에 썼던 사진이라고 한다. 원래는 아빠가 가지고 있었는데 예전에 내가 뺏었다. 그때는 술 마시고 엄마 이야기를 하는 아빠가 싫었기 때문에 그 사진을 없애려고 했는데, 차마 그러질 못했다. 유일하게 남은 엄마 사진 한 장... 지금은 코팅을 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앨범 한편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