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서 집밥은 우리 할매가 만든 집밥
요즘 부쩍 집밥이 먹고 싶어진다. 아마도 다시는 먹을 수 없는 집밥이기 때문일까?
나에게 있어서 집밥은 우리 할매가 만든 밥과 반찬, 찌개 등이다. 국민학교(나는 국민학교로 입학해서 초등학교로 졸업했다.)부터 중학교 때까지 내가 다닌 학교는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그 도시락들을 만들어 주는 건 당연히 우리 할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부모님과 같이 살게 되었지만 내 도시락 담당만큼은 우리 할매! 그래서인지 주변의 다른 친구들과는 좀 달랐다. 나물에 달걀에 곱게 싸인 분홍쏘세지!, 김치에 직접 만든 미니 돈가스(지금 생각해 보면 미니 돈가스 모양을 한 고기완자인 듯...)까지.... "나도 친구들처럼 돈까쓰 먹고 싶다! "라는 내 말에 시판이 아니라 다진 고기를 사다가 야채를 넣고 반죽해서 밀가루와 빵가루를 묻힌 후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구워낸 미니 돈가스에 시판용 돈까쓰 소스... ㅋㅋㅋ
거기에서 여름이면 시원한 오이냉국에, 콩나물을 다량으로 사서 멸치와 청양고추를 넣고 간장에 조려낸 우리 할매의 특허반찬인 콩나물 조림... 나는 같이 들어간 멸치가 싫어서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헤집다 콩나물만 쏙 골라서 먹고는 했다.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로 끓은 비지찌개, 내가 젤 좋아하는 잡채까지..... 우리 할매의 레시피는 끝이 없다. 작년에 그렇게 입원하시기 직전까지만 해도 겉절이도 만드시고 고추장, 된장, 간장까지도 우리 할매는 집에서 만들었다. 그 쿰쿰한 메주 냄새가 싫어서 이젠 그만 만들고 사서 먹자고 하는 가족도 있었지만 나는 그 냄새가 싫지 않았다. 익숙했기 때문일까? 그래도 간장을 다리는 냄새만큼은 으~ 상상을 뛰어넘는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연탄불을 땠었다. 그래서 아랫목에 가면 저녁에 늦게 오는 할배를 위한 밥 한 공기가 이불 속에 들어가 있고, 메주 냄새가 쿰쿰하게 났던 기억이 남아있다. 우리 할매표 고추장은 단맛은 덜하고 맵다. 그래서 본가에 갈 때면 늘 큰 플라스틱통에 한가득 가져오곤 했다. 매운 고춧가루와 된장도...
할매가 만들던 레시피를 기억을 더듬어 만들어도 그 맛이 나질 않는다. 오늘은 우리 할매가 내가 아플 때면 만들어 주던 김치국밥을 만들어 먹었다. 피난시절에 많이 먹던 것이라고 한다. 쌀뜨물을 끓이다가 푸욱 익은 신김치를 넣고 끓이다가 설탕과 김칫국물을 넣고 간을 맞춘 뒤 밥을 한 공기 넣고 죽처럼 밥이 퍼지도록 끓인다. 레시피를 찾아보면 콩나물도 넣고, 파도 넣고 하는데 우리 할매의 레시피는 쌀뜨물과 맛있게 익은 김치, 설탕, 그리고 밥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런데 할매가 만들어주던 그 맛이 아니다.... 역시 할매의 손맛이 빠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