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임과 도리? 내 인생은 나의 것?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지난번 본가 방문 이후 두 계절이 지나갔다.
올해는 유급휴일수도 적고, 아직 시간단축 하는 중이라 본가에 가는 것을 미루고 있었는데, 할매가 전화할 때마다 언제 오냐며 목이 빠지다 못해 눈이 빠지겠다는 과격한 표현까지 하는 것을 듣고는 조금은 무리해서라도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보여드리자는 생각에 이번 방문을 결정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표현이 아니라 방문한다는 표현이 참 서글프다.
집에 도착을 하자, 할매는 주간보호센터를 다녀와서 한숨 주무시고 계셨다. 내가 다가가서 깨우자 처음에는 나를 몰라보셨다. "니가 누고~?"라는 할매의 한마디에 내 심장은 저 밑으로 뚜욱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억지로 웃으며 "할매~ 내 누군데? 누군지 모르겠나?"라고 묻자, 한참을 빤히 쳐다보던 할매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맺혔다. "아이고~ 니가 우째 왔노~~" 하면서 나를 끌어안고는 한참을 우셨다.
다행이다... 반응이 조금 늦긴 했지만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이번에 할매를 보러 와서...
다행이다... 늦지 않아서...
4박 5일의 일정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엄마를 기억하지 못하는 할매를 직접 보기도 했고,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는 할매를 보기도 했다. 확실히 지난번 방문보다 치매가 진행되고 있었다. 지나가는 시간도 점점 진행되어 가는 할매의 치매증상도 내 힘으로는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에 내 자신이 참 무능하게 느껴졌다. 알고 있다. 그건 그 누구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젠 만남의 안녕보다는 이별의 안녕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것도..
이번 방문에서 내 마음을 가장 무겁게 한 것은 아빠의 말이었다. 내가 귀국했으면 한다는 말이었다. 지금 우리 집에는 소득이 할매와 아빠 앞으로 나오는 연금정도와 아빠가 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에서 그동안의 생활비로 쓰고 남은 돈이 전부였다. 아빠말로는 앞으로 1년 정도의 생활비는 남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한국으로 돌아와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점은 경제적인 도움을 바란다는 것이었지만 정작 앞으로 내세운 이유는 아빠의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으니 할매의 간병을 내가 맡아서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동생은 결혼을 했으니 생활비를 도와달라고 하거나 할매의 간병을 할 수 없고, 할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없다면 요양병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에게 그 말들은 협박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아빠와 많이 이야기도 하면서 아빠가 그동안의 나의 힘듦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전의 나였다면 할매의 일이 엮이는 이상 모든 것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난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할매에게는 너무 미안한 말이지만 나 이 정도면 많이 하지 않았어? 더 해야 해?라는 이기적인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일본으로 돌아온 지금도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