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테스코 스콘, 맛은 있더라.
이번 글에서는, 디린이 고민상담소를 운영하며 이따금씩 받는 해외취업, 그 중에서도 그나마 경험이 있는 영국 취업에 대해 현황, 취업시장 분위기에 대해, 개인적인 실제 경험들을 바탕으로 소개해보려 한다. 그리고 이 글은 IT업계 정도에서의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을듯 하고, 딱히 목차간 개연성은 높지 않으니, 그냥 보고싶은 데만 골라봐도 무방할 듯 하다.
목차
1. 메타가 불러온 어둠의 기운
2. 스타트업이 쉽다고요?
3. 은행들의 줄도산이 구직시장도 얼린다.
4. 그래도?
메타가 불러온 어둠의 기운
작년... 이었던가 올해초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SVB등 몇몇 은행들의 줄도산이 이어지기 전, 우리 일상이 코로나 전으로 점차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메타버스라는 존재에 대한 회의감이 감돌기 시작했고, 이에 메타를 설립한 마크 주커버그 마저 자신의 오판을 (쿨내나게)인정하며 사람들을 대량 해고해버렸다.
그리고 이런 기운은 영국에도 감돌았다. 당시에 나는 대장놀이에 과몰입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인해 수개월간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고, 무려 몇개월만에 퇴사를 결정하려던 참이었는데, Klarna라는 (나름)대규모의 스타트업(?) 또한 인력을 대거 갈아치우고 새로운 사람들을 다시 뽑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 그래서 아마 지금은, 이전보다도 경쟁이 더 치열해졌을거라는 가정을 많이들 하고 있다.
(사실 클라나가 스타트업인진 잘 모르겠다. 그건 정확히 알아봐야 하긴 하다..)
아무튼, 그때쯤부터였던것 같다. 자꾸 암흑의 기운이 도지기 시작한 것은.
스타트업이 쉽다고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건 제각각이라 유니버설하게 '규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떤 유튜브 영상을 보면 스폰서십 제도의 구조에 대해 소개하면서 '그래서 스타트업이 상대적으로 대기업보다 쉽다'는 점을 강조하는 영상이 있는데, 이는 지극히 한 단면에 대한 낙관적 전망에 불과하다.
일단 영상에서 말하는 '스타트업이 좀 더 낫다'라고 말하는 기준은, '스폰서십을 회사에서 지급해주기로 했을 때 회사가 영국 정부에 지출해야 하는 외국인력 고용에 대한 대가'의 절대적 금액수치가 대기업에 비해서는 조금 낮은 점을 말한다. 그건 맞다.(지금 기준으로 그 영상은 아마 3-4년전 정보가 되어버렸을 거라서, 2023년 현재는 법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취업은 스폰서십이 전부가 아니다.
왜 영국에서의 스타트업 취업이 어렵다고 하는지를 이해하려면, 다음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스타트업 취업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가?
일단, (이건 한국취업에서도 예외는 아니나)우리가 스타트업으로의 취업을 꿈꿀 때 우리가 그리는 그 꿈이 어떤 것이냐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많은 스타트업 구직자들이 그 세계를 꿈꾸는 이유는 순수히 '저 회사의 프로덕트를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내가 잘 키워보고 싶어' 내지는 '(특히나)이 회사와 함께하고 싶어'는 아니었다. 그냥 나도 평범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직/간접적으로 보고 느꼈던 바에 의하면 경력직이든, 신입이든, 작은 팀이지만 정말 여러가지 면에서 애정이 가고 내적 동기부여를 일으키게 만드는, 그런 아담하지만 쫀쫀하고 친근한 그런 것을 꿈꾸고 스타트업을 찾는 경우가 조금 더 많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스타트업으로 가고자 할 때 조건은 다음과 같이 정의해볼 수 있다.
서로가 충분히 끈끈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작아서 인원이 아주 많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자격 미달'이다.
말 그대로, 아무리 우리가 열정과 실력이 넘쳐도, 외국인을 뽑아줄 '자격'이 못되는 곳들이 압도적이다. 거의 95%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건 내가 실제로 Pre-seed레벨부터 A,B시리즈 펀딩에 도달한 스타트업들까지 다양한 규모와 구조의 스타트업에 수백군데 지원해 보고 얻은 결과다.
위의 조건을 충족하는 회사는 거의 대부분 Pre-seed 레벨에서 Seed레벨에 속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회사들은 당신을 지원해줄 여력이 없다.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봤을 때 확인된 바로는 스타트업 자체가 외국인력 채용이 가능하려면, 구직자로서 개인이 갖춰야하는 언어점수나 그런 형식적인 요구사항 외에도
a) 회사가 설립된 지 최소 3년 이상인 곳이어야 하며
b) 해당 외국인에게 최소 3년 간 계약된 연봉을 제공할 수 있는 규모의 '자산'을 갖고 있는
곳어야만 외국 인력 채용을 위한 스폰서십 신청(이건 회사가 해외채용을 위한, 정부를 향한 일종의 자격증 신청이다. 개인의 스폰서십 신청이 아니다)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2가지 조건을 보면, 위에서 바라던 그림과는 맞지 않는다. 일단 업력이 3년 이상이나 되었는데 인원이 10명 이하인 곳은 많지 않고(보통 2018/2019년도에 설립된 스타트업의 경우 통상적으로 못해도 30명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두번째의 경우에도 Pre-seed에서 저정도 자산을 미리 갖고 시작하는 극초기 스타트업은 드물다.
물론, 엔젤투자든 뭐든 받아서 최소 다음 라운드까지 존버할 어느정도의 투자는 받아두었으니 인력을 채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딱 맞는 형태를 갖춘 스타트업은 스폰서십을 제공하면서까지 출혈을 감내할 여력이 안된다. 구직자의 능력 유무와는 관계가 없다. 그래서 이왕이면, 어지간하지 않으면 그냥 영국 스타트업에서는 영국인 또는 영주권자만 뽑는다. 심지어는 아예 지원서 양식에 '당신은 영국에서 일하는데 있어 근미래 또는 먼 미래에 비자 스폰서십이 필요한 상황입니까?'라는, 우리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그런 질문을 넣어 지원자를 신속하게 걸러낸다.
영국사람들이 대체로 겉보기에 단순해보여도, 뭘 대충 하지는 않는다.
하여튼 우리만큼이나 모순으로 가득찬 인간들이다. 이런 순간만큼은 좀 쉽게쉽게 가주면 떨어져도 위로가 되겠는데, 여기도 치열한 구직시장이라고, 절대 그렇게 해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아직 스타트업 팀의 인력이 CEO 한명이어도, 반드시 (다른 글에서 소개한) 채용 프로세스를 웬만큼 따른다. 프로젝트중 하나를 골라 소개하는 절차에 더해, 디자인 테스트를 거의 열에 아홉은 치렀던 기억이 있다. 어쩌다 정말 운좋게 테스트가 없는 팀의 공고를 봤다고 해도, 최소한 프로젝트 사례발표는 꼭 시키는 편이며 만약 명시된 절차에 없었어도 추가적으로 좀 더 심층 인터뷰나 테스트를 하고자 하면, 요청을 해올 수 있다.(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도 디자인 과제를 가지고 발표면접을 한번 더 했다.)
이게 꼭 스타트업 구인시장의 특성으로 정의하긴 어려우나, 이 얘길 한 이유는 제목처럼 '스타트업이어도 할건 다하는'게 대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타트업이라고 만만한 건 절대 아니다.
은행들의 줄도산이 구직시장도 얼린다.
SVB의 파산과 이를 시작으로 줄줄이 다른데 인수되거나 똑같이 파산한 은행들이 생겨나면서, 지금 자본시장은 꽁꽁 얼어붙어있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돈줄이 얼어붙은 만큼, 아무래도 이 일련의 사건들이 있기 전에 비해 웬만하면 자국민을 뽑아서 편하게 가고자 하는 경향이 좀 생긴것 같기도 하다.
정말 프리랜서 계약직을 포함해 모든 일자리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해졌다. 영국에 오기 전부터 알고 지냈던 한 주니어 디자이너는 내가 영국에 오려고 준비할 때부터, 여기에서 2번의 취업을 할 동안 (심지어 영국민인데) 한번도 원하는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계약직 정규직 가리지 않고 그냥 '일자리 전쟁'이라고 보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사실 주어진 상황 자체가 점점 더 냉혹해져가고 있어서, 나는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아예, 100% 불가능!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내 모든 걸 내던질 각오가 되어있는 만큼, 또 굳이 스타트업같은 특정 유형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Linkedin 공고는 계속 새로고침 되고 있는게 사실이고, 해볼 사람은 하고 있다.
다만 상황이 혹독한 만큼, 스스로가 더 뚜렷하고 명확한 게 아니면 어정쩡한 스탠스로는 긍정적 전망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에필로그.
바라건대 해외취업을 추천하냐고 묻는 사람만큼은 없었으면 한다. 그건 추천하면 하고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든 하고자하는 열정이 끓는다면 악재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썩 그렇게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면, 안하면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