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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챱 Jul 02. 2023

다양성(Diversity)에 대해서

이번 글에서는, UX에 대한 얘기보다 영국생활을 하면서 느낀 '다양성'이라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인사이트를 남겨보고자 한다.


목차

1. 다양성이란 뭘까?

2. 다양성도 양면이 있다

3. 옳고 그름에 대한 고찰

4. 시점의 변화




다양성(Diversity)이란 뭘까?

영국에서의 생활로 가장 먼저, 그리고 뼈저리게 느꼈던 것중 하나가 이 다양성에 대한 참맛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에서 수십년동안 살아오는 동안에는 '다양성'이라는 것의 절반 정도를 이해하고 있었다면, 이곳에 와서 살면서 나머지 50%를 이해하게 된것 같다.


일단 영영사전으로 찾아보면, Diversity라는 말을 검색해봤을 때는 다음 2가지 정의가 가장 대표적으로 출력된다.


1. The state of being diverse; variety.(다양한 상태)

2. The practice or quality of including or involving people from a range of different social and ethnic backgrounds and of different genders, sexual orientations, etc. (다른 성 정체성부터 성별, 다양한 인종/민족적, 그리고 사회적 배경에 속한 사람들을 포함하는, 또는 그런 다양한 사람들이 개입되어있는 어떤 사례 혹은 상태)


그리고 한국어로 '다양성'을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모양, 빛깔, 형태, 양식 따위가 여러 가지로 많은 특성.

사실 영어사전의 2번 정의는 상당히 특정 관점이 깊게 배어있는 정의이기도 한데, 아무래도 인종과 출신의 경계가 상대적으로 흐릿한 외국의 사전이어서 이런 정의도 추가해둔게 아닐까 싶다. 네이버로 검색해보면 다양한 분야의 지식백과에서 이 '다양성'이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각각의 관점을 녹여 잘 분류해주고 있다.그런 면에서는 한국 사전이 정리가 참 명료하고 잘 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성도 양면이 있

보통 우리가 '다양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부정적 느낌보다는 긍정적인 인상이 더 강하게 떠오른다. 왜냐하면 이 개념이 한국에서는,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보다 오히려 많은 유사성과 공통점을 공유하는 사회 특성상, 사람들을 조금 더 나은 문화로 이끄는, 성장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개념으로써 주로 작용해왔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사람이라면 대체로 공감할만한 다양성의 좋은 예를 살펴보자.

우리는 직장에서 다양성을 존중해, 이제는 누군가에게 회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또한 점심식사도 반드시 함께할 필요가 없으며, 남들과 꼭 똑같은 옷을 맞춰입거나 어떤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 강요받을 필요가 없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곳에 풀어놓는다.


그런데 외국생활을 해보면, 이 '다양성'이라는 것이 꽤나 색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한국인의 기준에선 황당하고, 마치 치른 값에 비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보이는 불편한 것들이, 한국땅만 벗어나면 그 즉시 '다양성'이라는 옷을 입고 얼마든지 '응 우린 아냐~ 그건 너희 사회의 기준이야~'라고 해버릴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친절도 그저 친절함의 정도일뿐

바빌론이라는 헬스케어 앱에 NHS 서비스를 등록해 쓰려다가 문제가 생겨 콜센터로 전화를 걸었는데,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는데도, 본인이 직접 해결해줄 수 있는 범주가 아니란 걸 깨달았는지, 곧 "다른 상담이 많이 밀려있는데, 이제 그만 좀 끊어주시겠어요?"라는 반응이 돌아왔었다. (얼마전에 바빌론 스타트업에도 약간의 위기가 닥친듯 했는데, 당시 병원등록 때문에 며칠을 생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주 잠깐 쾌재를 불렀다.)


아무튼 (빡치지만)이렇게 싹퉁머리 없는 응대를 해도, 상대방이 사실 나를 모욕하거나 비난한 것은 아니며 그 사람의 직업적 의무인 전화응대를 해줬기에 나에게 잘못한 것은 없다고 봐야 했다. 오히려 내가 겪은 기술적 문제를 왜 해결해주지 않고 저렇게 유야무야 마무리했는지를 따지고자 한다면, 그럴수도 없다. 그럴경우, 그사람은 곧장 "미안한데, 나는 기술자가 아니라서.... 그냥 아프면 직접 병원을 가"라고 하고 끊었을 확률이 오조오억%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나고자란 사람으로서는 기적의 논리로 느껴질 법 하다.


여튼 한국에서는 이런 퉁명스럽거나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는 리액션도, 이 지구 어딘가에서 모여사는 또다른 이들 사이에선 그건 그냥 그런 것일 뿐이다. 그게 싫다면 다른 앱을 쓰면 된다.


나는 이곳에 와서 지내면서, 다양성이라는 개념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어떤 상호영향권 내에 존재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어떤것을 '옳고 그름'으로 그것을 보지 않기로 했을 때 자동으로 넘어가는 '창고' 같은 느낌의 개념이라는 걸 깨달았다.




옳고 그름에 대한 고찰


'그럼, 옳고 그름의 경계는..?'

다양성에 대한 나의 굳건한 신뢰가 깨지자, 갑자기 이런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일단 다양성의 본질인 '다름'은 모든 선택지가 존중받을 수 있는 자유의 영역이다. 그리고 '옳고그름'은 정해진 기준선이 존재하는 통제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그 '통제'의 영역에 들어갈 것들은 과연 누가 정하는 것일까?


바로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다.


다시 말해, 그 집단 내의 norm은 각각 어떤 경계안에 속한 구성원들끼리 정하고, 서로 따르는 그런 '상호약속'일 뿐이라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어떤 것에 대해 강력히 비동의하고 거부한다면, 이는 모두가 동의하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이 그저 허공에 떠도는존재일 뿐이다.


아무튼 이렇게 다양성의 양면성, 그리고 옳고/그름의 참 의미까지 생각해보게 되니, 내가 얻은 깨달음은 이전에 알던 총 천연색 무지개에서 좋지도, 싫지도 않은 완전한 회색지대로 변해버렸다.




시점의 변화

그냥, 별로, 감정이 치밀어오르지 않는 순간이 더 많아졌다


이후, 내가 어떤 상황을 다루는 방식은 (나에게)꽤나 흥미로운 쪽으로 변했다.


위에서 말한 다양성이라는 것의 참맛을 알고 난 이후부터는, 불편한 상황이나 감정이 찾아올 때마다

'이것은 다양성의 범주인가? 옳고 그름의 범주인가?'

'이것의 옳고 그름에 대해, 어떤 집단의 기준을 따를 것인가?'

'저 사람은 어떤 문화권에 속한 사람이며, 어떤 배경을 갖고 삶을 살아가는가?'

'저 사람과 나의 관계에 있어 서로 수용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없고, 수용해야만 하는 것들은 어떤 것인가?'

하는 물음들이 연이어 찾아온다.


그러고 나면, 삶에서 마주치는 것들에 대해 때로는 그 감정이나 순간 했던 생각이 갑자기 머쓱해져, 스스로 어떻게 마무리 해야할지 난감한 순간도 제법 많아졌다.




나 자신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다.

점점, 많은 것들이 '사실 알고보니 지들도 별거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져가는게 많아진다. 어떤 때는 이런 것이 자기발전같아 굉장히 기분좋지만, 때로는 어떤 생각의 근간을 무자비하게 흔들어대는 것이기도 해서, 참 다이내믹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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