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댕챱 Aug 07. 2023

외국에서의 삶에 대한 착각

'우와 댕챱님 영국에 계세요?'

'저도 해외취업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가 지금 영국에서 살고 있다는게 드러나면 가장 먼저 받는 리액션들이다.


일정기간 영국에 살면서 느낀점, 그리고 그로 인해 얻은 인생에 대한 인사이트들이 많았는데, 구조적으로 잘 정리를 해보려고 매일 생각해봤지만 그만 실패했다.

다만, 지금 내 안에 쌓인 크고작은 깨달음, 이해한 점 등을 거대한 하나의 문장으로 축약시키는 데는 어느정도 성공한 것 같아서, 그 인사이트를 전달해보고자 이 글을 썼다.

(구구절절 다른 말들도 뒤이어 쓰긴 했는데, 솔직히 귀찮으면 그건 안봐도 된다.)


외국에서 산다는 건
+가 아니라 제로섬 게임이다.


다만, '완벽'의 기준을 좀 많이 낮추면, 말로써는 '완벽'해졌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나도 지금까지 외국에서 이렇게 오래 살아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나 또한 위에서 말한 질문들, 그 질문들에 내재된 기저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외국에 나와 관광이나 공부 외의 목적으로, 정말 하나의 지속적인 '삶'을 일구며 느낀 점은:

1. SNS나 유튜브에 10여분짜리 영상으로 토막 편집된, 환상적 라이프스타일은 정말 극히 일부분이며

2. 외국 삶의 장점을 얻고싶다면 한국 삶의 장점중 정확히 동일량을 잃어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3. 그 동일량 중에는 당신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도 포함었을 수 있으며, 끝으로

4. 정신적으로도 완전한 한 성인으로 독립해있지 않으면, 귀국하고픈 마음을 느낄 확률이 꽤 높다는 것이다.






남들과 비슷한 출발선

사실 대학교 졸업직전에 잠깐 영국만 여행해본 적이 있다. 열흘 남짓의 여행이었는데, 너무 환상적인 시간들이었고 인종차별적 놀림을 받은 경험도 있지만 그조차도 추억으로 왜곡될 정도로 그렇게 첫 유럽경험은 날 거의 영국/서유럽권 예찬론자로 만들 정도였다. 그리고 환상적이었던 짧은 여행과, (취업이 안되어서 힘들어하던 시절)어머니의 지나가듯 던지신 해외취업 제안에 불이 붙어서 거의 반은 승부욕(내가 이걸 해내나 못해내나 두고봐라), 반은 내 열망을 향한 저돌적 행진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미리 어느정도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나름의 준비를 해온지가 꽤 됐다. 내 모든 커리어 자체가 해외취업을 하기 위해 빌드업해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는 깊게 심취해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어찌저찌 외국에서 일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출국이 확정되면서 나는 조금 겁이 났다.

자취경험도 없는 캥거루족이, 갑자기 어느날 먼 나라에서 홀로 장기간 살아야 한다는 건 엄청난 도전이었다.

아무리 먼저 다녀온/살고있는 사람들이 이렇더라 저렇더라 한들, 그 곳에서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1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어렸을 때부터 갈망해온 꿈이었고, 그렇게 얻게된 소중한 기회를 눈물젖은 기억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한국에서 해볼 수 있는 나만의 준비를 했다.


일단 최대한 영국이라는 사회가 가진 여러 단면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보고, 그 사회에 대한 거대한 지도를 먼저 그려보고자 했다. 그래서 영국에 오기 전, 일부러 한 6개월 정도는 영국을 예쁘게 그려내는 글이나 영상은 일부러 보지않았다. 대신 영국생활의 단점, 범죄사건들, 영국사람들에 대한 안좋은 시각이 생길수 있는 내용들 중심으로만 봐왔다. 누가봐도 별볼일없는 애들 같아도, 협업 제안이 오면 최대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경험을 쌓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리고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나라이니만큼, 신입 때 회사에 취업하면서 차곡차곡 최대한 돈을 많이 모아 웬만한 사건이 터져도 최소 몇달은 추가로 머무르며, 굶어죽지는 않을 정도의 경비도 마련했다.




아무리 그래도, 실전과 상상은 다르다

그렇다, 아무리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자본주의 시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를 한다 한들, 실전은 실전이며 결코 상상만으로는 온전히 대비되지 않는다. 지난 1년동안 영국생활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일상 문제들과 골칫거리들을 혼자힘으로 방법을 찾고, 어찌저찌 넘겨가며 고달픈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아, 한국은 정말 서비스 측면에서 여러 시스템이 잘 갖춰진 사회구나'라는 걸 뼛속까지 실감했고, 그토록 바라던 영국땅에 와서 회사도 다니지만 '뭐 얘네도 한낱 비슷한 수준의 인간이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크나큰 착각

나에게서 완전히 '서구사회 동경적'인 생각이 없어졌느냐, 라고하면 그렇지만은 않다. 하지만 맨 처음에 말했듯, 이제는 더이상 영국에서의 삶이 꼭 한국에서의 삶보다 더 낫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영국에 온지 몇달 되지 않았을 시점부터 이미 '만약 누군가 영국에서의 삶의 장점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우리가 외국생활을 동경할 때, 그 이유는 '지금의 XX같은 삶을 벗어나 새 땅에 가면 뭔가 지금보단 나아질 수 있을것 같아서' 또는 '외국회사에서 일하는 모습이 멋져보이거나 특정한 측면이 자신이 원하던 것과 일치해서'인 경우가 많다. (이건 비판이 아니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외국생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쉽게 착각하는 것이 있다. 바로 외국생활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고, 누려오고 있던 것에 '+'를 하는 삶이 절대 아닐거란 것이다. 즉, 무언가 더 완벽에 가까운 이상향을 얻고자 오는 거라면,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외국에서의 삶은 철저히 제로섬 게임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얼마나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당신은 외국에서 당신만의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반드시 그만큼의 무게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한국에 버리고 와야 한다. 그래야 그 빈자리를 외국에서 얻게되는 새로운 것들로 채울 수 있다.


왜냐고? 외국은 한국과 다른 곳이니까.

한국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회 1이라면, 외국사회는 그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살고, 그래서 다른 시스템, 다른 언어를 가지며 한국과는 또다른, 그지같은 문제들을 안고있는 사회 2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누리던걸 크게 잃지 않으면서 +하고자 한다면, 그곳을 한국화시켜야만 어느정도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곳을 그렇게 한국화시켜버리면, 과연 그곳은 당신이 꿈꾸던 유럽/서구사회가 맞다고 볼 수 있을까? 난 동의하지 않는다.


정말 잃을 각오가 되어있나?

아마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치만 나 또한 영국생활을 하며 깨달은 것인데, 삶은 우리가 이런 각오를 하면서 감내하기로 한 것만 쏙쏙 골라 완벽하게 흘러가주지 않는다. 어디서, 어떤 삶을 택하느냐에 따라 '어어, 이건 아닌데...?!'하고 당신이 양 손에 꽉 움켜쥐고 있었던 것들 중에서도 꽤 많은 것들을 강제희생 시켜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이될지는 아무도 모르며, 직접 여기에 와서 그것을 잃어봐야 '아..... 이걸 얻으려면 내가 이걸 희생했어야 했구나'라는 탄식과 깨달음을 얻는다.




마무리하면서

솔직히 내가 처음에 외국으로 나와 온전히 나만의 삶을 개척해가고 싶다는 꿈을 가졌을 때, 그 동기를 보면 정말 시답잖다. UX디자인으로 진로를 잡고자 했을 때 그 동기도 떠올려보면 굉장히 웃기는 동기였다.


암튼, 이따금씩 외국생활에 대해 막연한 꿈과 환상을 갖고 외국에서의 정착에 대해 묻는 경우가 있어서,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게 귀찮아 깔끔하게 하나의 글로 남기고자 했다. 그렇게 외국에서의 삶이 어떨지 궁금한 사람은, 누구나 보게 하고 싶기도 했다.


외국으로 온다고 해서 마냥 좋을 수는 없다. 한국에서도 가끔 웃는 날이 있듯, 영국에서도 가끔은 희미하게 웃는 날들, 마음 가벼운 날들이 존재하겠지만, 동시에 무기력함에 한없이 주저앉고 싶은 순간, 그저 울고만 싶은 순간, 내가 이러려고 여기까지 왔나 깊은 단전에서부터 고민하게 되는 순간들도 못지않게 많을 것이란 걸 나는 경고하고 싶다.


끝.

작가의 이전글 UI디자이너-시각적 How를 설계하는 능력자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