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다. 이건 외국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이거나, 혹은 한국어를 할줄 아는 영어권 교포/거주자라면 무슨 말인지 쉽게 짐작하리라 본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중 하나가 바로 '영어'다. 물론 이제는 유학파도 많아지고, 또 정말 센스있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학원 강사들도 많아졌기 때문에 잘하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영어 원서를 읽는다거나, 해외 아티클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근데 그건 영어 원어민도 마찬가지긴 하다.)
이 글에서는,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왜 영어는 번역서가 아닌 원서 그대로 읽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지 설명하고자 한다.
목차
1. 원서를 선호하는 이유
2. 실제 차이 느껴보기
3. 영어는 영어답게
내가 원서를 선호하게 된 이유는 딱 하나다. '언어'라는 것의 고유한 성질 때문이다.
사실 이전에 교양 프로같은 데서 전문가들이 '언어는 비단 표현의 수단이기만 하지 않으며, 그 곳의 문화와 정서를 함께 반영한다'는 식의 말들을 했을 때는 그 의미가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에 와서 다시 영어를 배워가고, 다른 외국어도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감을 잡게 되었다.
1. 영어와 한국어는 기질적으로 다른 언어다.
2. 똑같은 메시지를 전달할 때도, 언어권 별로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각각 다른 표현법을 쓸수도 있다.
3. 때때로 한국어 스타일에 맞추려는 노력은 원문의 본래 의미를 왜곡하거나 온전히 전달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런 3가지 인사이트 때문에, 이제 웬만하면 영미권 저자의 책은 영어원서로 읽으려 노력한다. 물론 번역서로 읽는다고 해서 해 될 것은 없으나, 영미권 원어민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조금이라도 더 진하게 느끼고 이해하고 싶다면, 번역서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실제 예시를 통해 한번 대충 느껴보자.
다음은 닉 채터라는 영국학자의 저서인 '생각한다는 착각-Mind is flat'의 번역서와 원서에서 각각 가져온 내용이다. 물론 이 사람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아주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문장으로만 놓고 봤을 때 느껴지는 미묘한 해석의 차이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번역서)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설명을 포함해 의식적인 생각의 흐름은 그 순간에 만들어지는 창작물이지, 내면에서 벌어지는 정신 사건의 보고(심지어는 추측)가 아니다."
"(원서)Our flow of conscious thought, including our explanations of our own and each other's behaviour, are creations in the moment, not reports of (or even speculations about) a chain of inner mental events."
대체로 보면 두가지가 같은걸 말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한단계 더 들어가서 살펴보면, 약간 다르다. 국내 번역서에서는 '내면에서 벌어지는 정신사건의 보고(심지어는 추측)가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마치 의식적 사고의 흐름이 내면에서 벌어지는 어떤 단편적 해프닝에 대한 보고(표현, 알림)가 아니라는 것처럼 해석될 가능성이 생긴다. 하지만 원서에서는 'not reports of a chain of inner mental events'라고 함으로써, 엄밀히는 '우리 정신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연결된 체인처럼) 일련의 흐름(연결)을 가진, 그런 mental event들에 대한 report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단어 report를 보아도, 번역서에서는 이를 '보고'의 의미로 번역해두었는데 이는 일부 맞으면서도 한국 원어민으로서 매끄러운 문장으로 받아들이기에 왠지 어색하다. 표준대국어사전에 의하면 보고는 '일에 관한 내용이나 결과를 말이나 글로 알린다'라는 의미를 갖기에 틀린 것은 아니나, 오히려 이 표현은 한국사회에선 주로 윗사람에게, 또는 공식적으로 어떤 내용을 정리해 올리는 맥락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기에, 번역된 문장을 보면 분명 그 문장이 말하는 것은 알아듣고 있지만, 그 문장이 가진 의미가 매끄럽게 전달되진 않는다. 차라리 그럴 때는 그냥 report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을 기반으로 문장을 읽는 것이 더 내용을 빠르게 이해하고 넘어가는 데 더 도움이 된다. (안그러면 림보에 빠질 수 있다.)
또 다른 예시도 있다.
"(번역서)마음은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을 해석하고 정당화 하며 이해하려고 한다."
"(원서)Our mind is continually interpreting, justifying and making sense of our own behaviour, just as we make sense of the behaviour of the people around us, or characters in fiction."
이 문장에서는, 거의 의미가 비슷하게 통하나 두번째 쉼표 다음에서 'make sense'를 '이해하려고 한다'로 해석한 점에서 작지만 문장이 약간 다르게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해하다'라는 표현의 정의도 살펴보면 '납득'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영어권에서의 make sense의 뜻을 살펴보면, '납득'과 '이해', 그리고 '타당화', '정당화'의 의미가 조금씩 한데 뒤섞여 있는데, 실제 영어권에서는 reasonableness나 rationality여부에 관련된 맥락에서 더 잘 쓰인다는 걸 고려할 때, 어쩌면 완전히 '이해'라는 말의 뜻과 동일시해서 이해하기에는 미묘한 구석이 있을 수 있다.
영어는 한국어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영어는 한국적 정서나 한국사회에서의 공통된 상식, 문화를 담은 언어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누리끼리한', '정'과 같은 한국어 표현에 대해 설명은 가능하나 그 어떤 외국어도 100% 그 말의 힘과 의미를 다 담아낼 수 없는 것처럼, 영어도 그런 방면에서는 똑같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물론 문화적인 차이도 담는 것이 언어이기에, 문화에 대한 이해없이는 대체 왜 그런 표현을 썼는지까지는 공감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차이만이라도 인정하고 영어글을 영어답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당신은 비로소 그 저자의 생각과 말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