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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Dec 28. 2020

이기호 「누가 봐도 연애소설」을 읽고 나서.

나의 찌질했던 순간이 다시 되새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기호 #누가봐도연애소설 #위즈덤하우스 #독후감

이기호, 누가봐도 연애소설, 위즈덤하우스


나는 이기호 작가 소설을 좋아한다.


황순원 문학상에서 「한정희와 나」를 처음 읽게 된 후, 소설가 이기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어떤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의 작품을 다 읽은 건 아니지만, 내가 읽었던 그의 소설은 내게 질문을 던져 주었다. 한마디로,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개인적인 취향인데 나는 장편소설을 좋아한다. 단편 소설도 물론 읽고 좋아하지만, 선택지가 있다면 장편을 읽는다. 내가 좋아하게 될 확률이 높은 소설이더라도, 단편 소설집은 가능한 한 안 읽었던 시기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기호 소설을 좋아하지만 ‘단편 소설집’이라 생각해서 부러 읽지 않았다.


그런데, 왓챠 독서 리뷰에서 한 코멘트가 눈에 띄었다.

“그 어떤 철학자, 과학자도 연애를 풀어낼 수 없다. 소설가만 가능하다.”


그 말이 콕 마음에 들어서 소설을 구입했다. 아,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건 ‘아주 짧은 단편 소설집’ 이었고, 많이 당황스러웠다. 정확히 확인하지 못한 채 이끌리는 대로 주문한 나의 실수였다. 소설이나 글의 문제가 아니라, 장르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우리는 별 거 없이 살아간다.


「누가 봐도 연애소설」 은  실제로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픈 사람, 당장의 생계가 급한 사람, 데이트 비용을 정확히 계산을 해야만 삶이 굴러가는 사람 등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고 ‘사건’이라고 명할 만큼 치명적이거나 결정적인 이야기도 없다. 현실의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 속의 사람들은 보통의 무게를 짊어지며 별 거 아닌 걸로 괴로워하고 별 거 아닌 것에 행복을 느낀다.


만나고 이별하고 시간은 흐르고.


‘우리가 같이 키웠던 개는 데려가면서 왜 나는 버리니’ 소리치는 찌질한 남자가 등장한다. 나는 실소를 터트렸다. 이별할 때 구차하다 싶을 정도로 구는 모습은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 사실 한번쯤 겪어보지 않았을까? 나는 한번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사실 실소는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나 혼자만 알기에도 부끄러워서 이불킥을 할 찌질함을 친구나 가족이 알면 어떨까라는 아찔한 생각도 해봤다. 아 이별할 때 찌질하게 구는 거 나만의 일은 아니었다.


유치한 시간도 있었어.



한편, 누군가를 좋아했던 시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여자친구처럼 독감에 걸려 학원에 가지 않겠다는 남자아이가 있다. 여자아이는 학원은 핑계고, 사실 자기를 좋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런 딸을 바라보다가 남자는 느닷없이 헤어진 아내를 보고 싶어 한다. 언젠가 자신도 그랬던 시절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유치한 행동으로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그 사람이 좋고, 그 기분에 들떠서 감정이 이끄는 유치함에 빠져있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지우고 싶은 순간도 사실 있다. 분명한 건 누가 좋았던 적도 있고, 바보 같은 행동으로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는 것이다. 그때는. 적어도 그때는 그랬던 시기가 있다. 다만 지금은 큰 감흥도 없이 남 일 처럼 느껴만 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수경씨를 사랑해요. 다른 사람 상관없이.” p.34


연애, 감정을 주고받는 게 너무 낯선 것으로 느껴지는 지금 저 문장이 마음을 동요시키면서 무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왜일까.



「한정희와 나」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와 다르게 작가가 익살꾼처럼 느껴졌다. 자극적인 이야기보다, 내 주변이거나 나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궁금하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는 게 어떨까. 스스로를 마주보는 것 같아 불편한 순간도 감당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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