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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Dec 28. 2020

나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

Nobody can be freed from prejudices



좋아하는 영화를 열 번 보면서 열 번을 다 울 수 있어요?


영화 Zootopia (주토피아)


 「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에 수록된 문장이다. 그때 나의 대답은 “아니요”였고, 그 대답은 아직 변함이 없다. 이미 본 영화를 또다시 본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어렵다. 그래서 두 번 관람한 영화가 손에 꼽히는데 「레옹」 ,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주토피아」 정도이다. 세 영화 모두 좋아하는 이유가 다르고, 저마다의 이유로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주토피아」는 내가 제일 좋아하고, 가장 많이 반복해서 본 영화이다.「주토피아」를 두 번째 관람할 때까지 나도 울었지만, 그 이후에는 울지 않았다. 열 번까지 보지도 못했고 열 번 이상 나는 울지 않겠지만, 영화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을 나는 「주토피아」를 통해 느꼈다.


It's not about racism, but prejudices


주토피아는 단지 인종차별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오히려 (보다 넓은) 편견에 관한 영화이다. 이건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기 때문에 나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인정해야 한다. 영화 속에서 크고 작은 편견들은 유머나 아이러니를 통해 드러난다. 주목할 점은 일방적인 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서로가 서로를 편견으로 대한다. 



자신에 대한 편견을 인지하고, 편견에 맞서려는 주디 역시 닉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포식 동물인 닉이 공격할 지도 모른다고 믿었기 때문에 여우퇴치제를 가지고 다녔다. ‘토끼는 귀여워’라며 프레임을 통해 자신을 평가하는 시선에 불편함을 토로하면서도, 주디 역시 다른 동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주디는 편견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편견의 가해자였다. 물론 주디 외 다른 동물들도 편견을 가지고 있지만, 편견에 적극적으로 맞서려는 디 또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게 보아야 한다.


사실, 편견 없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하지만 ‘주디’만의 문제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 사실 그 누구도 편견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 단지 편견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을 뿐이다. 오류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과 그냥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큰 차이점이 있다. 내가 보고 겪은 게 전부가 아님을 전제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나의 관점은 ‘나’의 한정된 경험과 지식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한계와 결함이 분명할 수밖에 없다. 개인은 단지 하나의 의견을 제시할 수만 있다. 그리고 개별화된 인간 존재만큼, 개별화된 의견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노력해야 한다. 나는 편견을 가진 사람이면서 편견으로부터 상처를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편견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주도적인 노력이 따라야 한다.

이해하는 건 미워하는 것보다 폼이 드는 일이다.

「주토피아」에서 주디는 닉에게 고백한다. “나는 끔찍했고, 편견으로 가득차서 너에게 상처를 줬어.” 울면서 주디는 고백하고 닉은 주디를 안아준다. 현실이라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별다르지 않으면서, 정작 자신에 대한 편견을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디와 닉을 지향점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나와 다르고 모른다는 이유로  배제하는 건 서로를 망치기 때문이다. 「주토피아」에서 편견 때문에 타인을 공포의 대상으로 규정지은 벨 웨더처럼 말이다.


태도를 취하는 건 오롯이 나의 선택이다.


다를 수밖에 없다. 다르기 때문에 끌리기도 하지만, 다르기 때문에  ‘배제’ 하기도 한다.  사실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다른 것’에 속하는데,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내 기준으로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다. 그 사람은 나에게 이해받거나 존재의 정당화를 입증 받아야 하는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상대방의 시선에서 상대방을 바라보는 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주디가 닉에게 울며 고백할 때, 나는 울었다. 내가 타인에게 바라기도 했고, 내가 타인에게 했어야 했던 장면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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