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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Dec 30. 2020

꽃은 쓸모없잖아.

꽃을 받고 싶었다.


클래식의 정석. 빨간 장미 꽃다발


나는 늘 꽃을 받고 싶었다. 두 팔로 꽃을 안고 향긋한 냄새를 직접 느끼고 싶었다.

지금도 꽃집을 보면 시선을 멈추고, 꽃내음을 잠시라도 느낀다. 친한 친구가 꽃다발을 받았을 때 매번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내게 클래식한 빨간 장미다발을 주는 것을 꿈꾸었다. 꽃다발을 선택한 이유가 내가 생각하는 만큼 감성적이거나 로맨틱하지 않더라도 크게 상관없었다. 전혀 실용적이지 않고, 방에 가져 오는 순간 뒤처리를 고민하게 될지라도, 꽃다발 받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장미다발을 들고 있는 기쁨은 내게는 없었다. 지금까지 4번의 졸업식이 있었는데, 졸업식에서도 꽃을 받은 적은 없었다. 대학교 졸업 때 꽃다발은 물론 있었는데, 내가 직접 구입해서 스스로에게 선물했다.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


꽃은 실용적이지 않아.


사실, 대놓고 꽃을 선물 받고 싶다고 한번만 주면 안 되냐고 구걸한 적도 있었다. 스스로 구걸했다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엎드려 절 받기 식의 요구를 했던 건 사실이다.



"B야, 나는 꽃을 받는 게 인생의 소원이야. 다른 선물은 필요 없어.”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무신경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꽃? 쓸모없잖아. 다른 거 해주고 싶어.”  B는 실용적으로 간직할 수 있는 선물을 원했다. 그는 실제로 백팩, 텀블러, 무등, 운동화, 샌들, 보조배터리 등을 선물하곤 했었다. 그에 따르면 일상적으로 필요한 선물을 주면, 그만큼 자주 그를 떠올릴 거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내 생각 많이 해, 라고 으쓱하며 말했다.



꽃을 사지 않은 그 이유.


나에게 필요한 선물을 주는 그의 마음씨는 고마웠다. 돈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꼭 주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챙겨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그의 선물을 가볍게 생각하거나 당연하게 여긴적은 없다. 하지만 꽃을 좋아하는 내 마음을 헤아려 줘도 괜찮지 않았을까. 꽤 사귀었는데도, 편지 한 장 없던 그는 자기 글씨체가 창피하다고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인쇄를 해서라도 줄게 라고 말했지만, 그와 사귀면서 편지 한 장 받지 못했다.



헤어지고 나서, 그는 꽤 여러 번 전화를 했었다. 그때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전부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딱 하나 선명한 기억이 있다. “너는 내가 그렇게 꽃 받고 싶었는데, 그거 하나 못해줬어?” 감정에 못 이겨 폭발하듯이 물었다. 술에 꼬부랑된 B는 “네가 제일 예쁜 꽃인데 무슨 꽃을 사줘?” 라고 했다. 통화를 바로 끊고, 그 이후 완전히 전화번호를 바꾸었다.     



별  이유 없이 네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시간이 흐르고, 오랜 친구에게 말했다. “K야, 나는 꽃 선물 받는 게 진짜 소원이었다? 남들이 뭐라든 나는 그래.” 수화기 너머 그랬냐고, 그럴 수 있다고 친구는 내 말을 들어주었다. 그 친구는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서 우리는 전화로만 연락을 했다. 1년 후 만난 친구는 내게 꽃다발을 건내 주었다. 나는 이게 무엇이냐고 물었고, “평생소원이라며.”  동네에 꽃집 있다고 덧붙였다. 자기 동네에서부터 한시간 걸리는 지하철까지 꽃다발을 가지고 온 그 친구의 모습이 그려졌다. 마음이 너무 예뻐서 고맙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게 배려이다.


사실, 내가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걸까. 생각도 했다. 아니, 그는 누나 출산 때 꽃선물을 했다. 실용적인 것만이 의미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유의 사람이 아니다. 그는 단지, 그냥 내 말을 가볍게 흘려들었고, 관심을 기울여 상대방에 집중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연애를 하면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주고 싶은 게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게 배려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단지, 그만큼 잘 보이고 싶었던 상대가 아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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