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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Dec 31. 2020

질문을 거부합니다.

    

질문을 거부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듣기보다 말하고 싶어 한다. 타인의 얘기를 듣기보다, 자기 이야기하느라 바쁜 게 사람이다. 그러나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싶은 순간도 찾아온다.      


“요즘 뭐 해?”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다가 안부를 묻기 위해 물어본다. 아니면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서문을 여는 문장이다. 그 뒤에 나오는 문장에 따라 반가울 수도, 아닐 수도 있는 발화이다. 부탁을 위한 연락이 아니더라도 반갑지 않을 때가 있다. 취직은 했어, 집안일 그때 그건 어떻게 됐어라는 질문들이 따를 때이다. ‘나’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집중했다면, 평상시 나에 대해 물었을 텐데 그러지도 않는 사람이 특정한 일에 대해 묻는다.



집안일, 취직, 학교 등 ‘그래서 그건 어떻게 됐어? ’라는 식의 질문이다. 바쁘고 각자의 일이 있다는 이유로 서로의 안부를 놓칠 때가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서로의 감정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연락해서 묻는 게  “그일 어떻게 됐어?”와 같은 거라면 사양하고 싶다.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의 감정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내가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



“요즘 뭐 하고 있는 거 있어? 아 이런 질문하는 거 불편한 건가?”     


퇴사 이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20분이 넘도록 답장을 고민했다. ‘이미 질문했으면서 불편하냐고  덧붙이는 건 좀 별로 같은데.’라고 말해줄까 고민했었다. 가끔 보는 지인이나 동료도 아니고, 인맥이 겹치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메시지를 지우고선 ‘똑같아. 할 거 하면서 밖에는 안 나가 ㅋㅋ’ 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 친구는 책으로 자기 계발하냐면서 요즘 같은 때는 알바 구하기도 쉽지 않겠다고 보냈다. 나는 따로 답장하지 않았다.



‘저 친구는 불편할까 봐 걱정한 것 같은데?’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렇게 느낄 수 없었다. 나를 배려하기보다는 신경을 ‘써주는’ 느낌을 주기 위해 덧붙인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불편할까 봐 마음으로 걱정했다면, ‘불편한 건가?’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게 아니라 본인에게 던졌어야 했다. 수신자가 ‘네. 불편해요.’라고 말을 해야만 자신이 썼던 말의 의미를 해석할 줄 안다면, 타인에게 질문은 하지 않는 게 낫지 않았을까. 오늘, 내일처럼 하루마다 쌓이는 내 일상과 기분은 궁금해하지 않는다. 다만 ‘사건’으로 나의 연대기를 일방적으로 기록하려는 것 같다.     



일상을 질문하는 사람.


“오늘 하루 어땠어. ”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어?”처럼 일상을 묻는 질문이 좋다.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이 느껴질 때도 있다. 타인의 일상을 질문하는 것은 때로 Ice breaking으로 쓰일 때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똑같을지도 모르는 타인의 하루하루를 질문하고 기억하려는 건 관심과 애정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일상을 질문하는 건 그 사람의 서사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일어난 보통이든, 별다를 거 없는 일이든, 슬픈 일이든 그 특징과 관계없이 그 사람 자체가 궁금하기 때문에 질문한다.



타인을 나를 자신처럼 복합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때로 악의가 없더라도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사람은 자신에 대해 복합적으로 생각하지만, 타인에 대해서는 단순하게 생각한다. 자신을 생각할 때면 감정, 상태, 관계 등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현재 자신을 바라본다. 하지만 타인을 생각할 때 그 사람의 사건이나 현재에만 단순하게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 즉 누구도 내가 나를 보는 만큼 나를 섬세하게 볼 수 없다. 타인에 대한 조악한 질문은 자신을 생각하는 만큼 사려 깊게 타인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던져진다.



질문하기 전에, 생각해봐요.

정말 그 사람에 기울여서 관심을 가지는 건지, 그 질문을 충족시키고 싶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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