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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an 01. 2021

걔, 실제로 별로래.

나만 이상하게 느낄까.

대상화되는 게 너무 당연한 걸까?



누구도 면전에서 외모 지적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외모 지적을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유명인일 경우, 사람들은 꽤 잔인할 만큼 쉽게 얘기한다.


나는 5명이 있는 친구 카카오톡이 있다. 어느 날 뜬금없이 여자 연예인 A의 웃는 모습이 올라왔다. 사진을 올린 친구 B는 “A 정말 예쁜데 웃는 것 봐. 잇몸 때문에 너무 안타깝지 않아?” 라며 글을 올렸다. 그러자 나머지 친구들도 동조하면서 “예쁜데 정말 잇몸 때문에 깬다.” 라며 친구 B의 말에 공감했다. 나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평가당한 것도 아니었지만 불쾌한 감정이 올라왔다.



연예인 A가 예쁘든, 그렇지 않든 사람들에게 걱정해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다. 연예인 A의 잇몸은 당사자 본인의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다. 실제 당사자는 고민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문제’라며 대신 고민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당사자가 실제로 고민하더라도, 그건 그 사람이 생각하고 해결해야 하는 영역인데, 함부로 침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명이 있는 단체 카카오톡에 사진까지 올려가며 공개처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실제로 알지 못하지만, 알려져 있는 사람이라면 감수해야만 하는 일일까?




그 사람 욕해도 타격 없어.



연예인 C의 화보가 올라왔을 때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C의 열렬한 팬은 아니었지만, 그녀를 예쁘다고 생각했다.  연예인 C가 예쁘다고 부럽다는 흔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 언니가 연예인 C 봤는데 실제로 안 예쁘다던데.” 옆에 있던 친구가 말했다. 연예인 C 예쁘다는 이야기 했으니까 자신이 들은 정보로 C에 대해 이야기하려던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실제로 보니까 별로더라’라고 직접 본 것도 아닌 들은 얘기로 깎아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평가절하당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연예인이나 혹은 유명인은 지인도 아니고 2D 인물 정도로 생각되기 때문에 쉽게 대상화된다. 몇 가지의 사실, 그것도 편집된 채 노출된 정보만으로 전부를 아는 것처럼  가볍게 평가한다. 주변 사람을 흠결 내는 건 자신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다. 이와 달리, 유명한 사람을 흠결 낸다고 해서 어떤 악영향이 따르는 건 아니다. 악플을 달아서 공연하게 기록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왜 그런 걸까?


유명 연예인에 대한 좋은 이야기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것 또한 개인의 자유이다. 그리고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이다. 단지 궁금하다. 굳이 ‘야 실제로 별로래’ ‘실제로 안 예쁘대’ 라면서 흠결을 찾아다니는 사람처럼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 예쁘니까 안 예쁘다고 말하는 거라고? 글쎄, 아무리 대상화하며 평가하기 쉬운 존재가 연예인일지라도, 누군가를 함부로 말하는 건 결국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지 못한다는 하나의 ‘방증’이지 않을까. 타인의 결점이 보이고, 그것을 꼭 지적해주어야만 하는 사람은 타인을 통해 자신의 싫은 모습을 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마음이 차있다면,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려 하지 않는다. 실제 지인, 회사 동료를 이야기할 때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은 꽤 있다.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하기 위해 혹은 해가 될까 봐 쉽게 말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도 유명인은 조악하게 평가한다. 그 사람 자체가 인성이 나쁘거나 잘못되었기 때문에 유명인을 단편적으로 보는 것일까? 아니, 사람은 나쁘지 않더라도 나쁠 때가 많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아?


2016년, 한 달 유럽 여행으로 한민 민박에 머물었던 때였다. 뮌헨에서 유명한 호프집이 사실은 되게 별로더라는 후기가 많아서 가고 싶지 않다고 사장님께 말했다. 사장님은 이상하다는 듯 “가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 아니야?”라고 말씀해주셨다.


실제 가보지 않으면 그곳이 어떤지 알 수 없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들은 내가 겪은 게 아니다.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것을 경험하더라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즉 실제 내가 경험하더라도, 내가 겪은 게 객관적인 진실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내가 겪어보지도 못한 것에 대해서 쉽게 대상화하며 깍아내리는 건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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