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잠만 자도 될 것처럼 잠이 늘었다.
작년 겨울부터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어제는 처음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했다. 밤 9시에 퇴근하고 집에 오니 대략 9시 40분. 강아지를 배에 올려놓고 그대로 소파 위에서 잠들었다. 그러곤 오늘 아침 9시에 일어났다. 거의 12시간을 잔 게 어제만의 일이 아니다. 근래 들어 부쩍 잠이 늘어서 일찍부터 피곤하고 아침에는 눈을 영 뜨기 힘겹다.
먹는 약의 용량 문제도 아니고 더구나 한약까지 열심히 먹는 와중에 생긴 갑작스러운 증상이라 허탈하다. 살겠다고 하는 게 고작 온갖 약을 입에 털어 넣고 꾸역꾸역 브런치에 들어와서 글을 쓴다. 엄마는 그마저도 쓰지 말라고 난리다. 남들 보는 인터넷에 글은 왜 쓰냐고 당장 관두라고 했다. 난 그 말이 차라리 죽으라는 소리로 들린다. 이제는 우울이고 무기력이고 더 이상 내가 손쓸 수 있는 단계가 아닐지도 모른다.
작년 결혼식 이후로 처음 만나는 친구와 모처럼 저녁 약속이 있어서 결혼반지를 끼고 출근했다. 회사에선 동료가 반지를 알아보곤 반지 너무 예쁘다며 구경해도 되냐고 물어봤다. 묻지도 않았는데 멋쩍게 “아 가끔 살쪘나 확인 용도로 껴요. 관리 차원에서요.“ 말해버렸다.
아무도 날 모르는데 가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시작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다행히 친구는 나의 불행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좋은 기회로 스카웃 돼서 한국에 돌아왔다고만 둘러댔다. 이런 거짓말을 할 때마다 마치 홍길동의 발 뒷굽에 내 마음이 다시 한번 짓눌리는 기분이다. 친구도 그 사이 이직을 해서 우리는 일 이야기만 나눴다. 친구와 저녁을 먹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일을 더했다. 모니터 앞에 앉아 스스로 주문을 외듯 한 시간 정도 더 일하다가 갔다. ‘넌 지금 이 일이 필요해.’ 어차피 집은 여전히 집 같지가 않다. 붕 뜬 상태로 마음 붙일 곳 하나 없다. 강아지도 오늘은 유치원에서 자고 오는 날이다.
사는 게 이토록 고행인데 왜 태어났나, 사는 동안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자주 생각한다.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않아도 될 감정들인데. 어차피 스치면 역사 속으로 흩어지는 찰나를 왜 이리 느리고 길게 아파하는지 모르겠다. 항우울제는 아무 도움이 안 될 정도로 효과를 못 보고 있다. 마침내 우울이 나를 더 깊게 갉아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