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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May 28. 2024

우울증과 싸우고 있습니다.

힘!



병원에서 약을 증량했다. 저녁 약은 빠졌으나 아침 약이 두 배로 늘어났다.


“지난 2주일치 약을 한꺼번에 털어서 눈 딱 감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지고 있는 주식을 다 팔아서 스위스에 가면 어떨까 싶었어요. 예쁜 풍경 보면서 트레킹을 하고 마지막엔 자면서 쉽고 편하게 가는 거예요. 화가 나는 건 이런 생각이 제 의지대로 드는 게 아니라 불쑥불쑥 무의식에 자꾸 침범된다는 거예요. 그러는 와중에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농담을 하고 기혼의 삶을 연기하고 있어요. 부부는 닮는다더니 제가 홍길동을 닮아가나 봐요. 이제 저도 지킬 앤 하이드 같아요.

우울이 무서운 이유는 제 마음이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예요. 이게 한낱 감정이면 이렇게 어렵지 않을 텐데. 거머리 같아요. 이겨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제가 지고 있다는 뜻인 거 아닌가 싶어요.“


병원 약 봉투를 받아 들고 오랜만에 술이 고파 혼자 집 앞 와인바에 갔다. 동네 와인바에 앉아서 잔술을 마시니 기분이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다.


혼자 술을 홀짝이면서 다음 달 계획을 세웠다.

6월에는 주말마다 등산을 갈 거다. 미운 살을 빼야지.

또 6월이 되면 그동안 모아놨던 상품권을 들고 백화점에 가서 목걸이를 사야지. 벌써 회사를 반년이나 다녔다고, 반년동안 잘 버텼다고 스스로 칭찬해 줘야지. 비싸고 예쁜 걸 사면 기분이 좀 나아지려나. 원래 나는 작고 반짝이는 걸 좋아했으니 내가 좋아하던 걸 보면 다시 기분이 좋아질 수 있을 거야.



108배는 못해도 술기운에 대충 50배는 했고 좋아하던 드라마의 마지막 회도 챙겨봤다. 드라마를 전혀 안 보던 내가 끝까지 본 작품이 벌써 몇 갠지 셀 수 없다. 홍길동 덕분에 넷플릭스 멤버십을 뽕 뽑고 있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오늘 하루도 잘 버텼어 연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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