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떨어져 죽는 대신 날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다시는 사주를 안 보겠다고 다짐했으면서 지난 주말에 또 사주를 보고 왔다. 내 브런치를 읽는 구독자-이제는 온라인 친구 사이가 된-가 자신의 사주를 보고 왔다며 말을 해줬는데, 어찌나 풀이가 신통한지 내 것도 보지 않으면 도무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만약 이 우주가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이미 짜인 구조라면 우린 똑같은 시리얼 넘버를 타고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타인의 삶에 대해서 내가 가타부타 말할 필요는 없지만 순식간에 동질감 혹은 전우애를 느꼈다. 그녀는 우연히 내 글을 읽고 마치 자기 사연을 그대로 써놓은 것 같아서 소름 끼치는 심정으로 내게 이메일을 보냈다. 우리는 몇 번의 이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공통점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는 것을 느끼고 서로 친구가 되었다. ctrl+C, ctrl+V를 누른 것 같은 가정환경과 성격, 취향, 그리고 배우자의 성격부터 병리학적 행동패턴까지 일치했다.
나와 그녀는 몇 달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은연중에 의지하게 되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이라서 오히려 각자 처한 상황과 비슷한 상처를 공유하며 서로의 아픔을 헤아려줄 수 있었다. 그래서 친구의 사주 풀이가 너무 공감되면서 동시에 내 사주 풀이도 궁금해졌다. 친구에게 연락처를 받아 곧장 찾아갔다.
엄마 나이대의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이 혼자 운영하시는 오래된 동네 철학관. 중학교 시절 교감 선생님 방이나 교무실 도덕 선생님이 앉아계시는 자리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동양철학 책들이 가지런히 정돈된 작은 공간.
내 사주의 구성과 특징에 대해서 한참 동안 설명을 해주시더니 뭐가 궁금하냐고 물으셨다.
"이혼이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요. 상대방이 변심해서 이혼하자고 했다가 막상 이혼하려고 하니 제대로 진행하지도 않아요. 소송도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내 상황이나 사연에 대해선 길게 말하지도 않았다. 선생님은 소송까지 가야 되면 남편 사주의 운도 한 번 같이 봐야 한다며 홍길동의 사주를 물었다. 첫마디가 대뜸 홍길동의 성격이 세도 너무 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이고 이 남자는 자기밖에 모르네. 성격이 너무 세서 지밖에 몰라. 근데 이 사람 지금 이혼하기 싫을 것 같은데? 그냥 화가 난 것 같아. 자기 뜻대로 안 되면 폭발하고 감정적이고 공격적이고 애처럼 떼쓰는 성격이야. 사주 보니 앞으로 아가씨한테 집착하겠어. 집요해. 근데 26년쯤에 이 남자한테 한 번 자기 반성하는 기운이 들어와. 지금 남편은 그냥 제멋대로 애처럼 화내는 중이고, 본인은 남편이랑 이혼을 하든 안 하든 앞으로 몇 년간은 계속 정신적으로 힘들 것 같아. 28년쯤 돼야 심리적으로 마음이 편안해지겠다. 108배를 해 봐요."
아니, 믿거나 말거나. 그가 반성한다고? 그게 2년은 더 걸린다고? 그럼 이혼은? 2028년까지 난 괴롭다고?
"저 그럼 이혼 못 해요? 26년에 그때 가서 남편이 반성하면서 미안해하면 저희 재결합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이혼 못하고 이대로 사는 거예요?"
선생님이 내게 해준 말은 고여있던 내 마음속 호수에 돌을 던지듯 잔잔한 파장을 불러왔다.
"우리들 인생은 사주 바깥에 있어. 사주에 정해진 미래는 없어요. 사람들이 사주를 보러 가는 건 정해진 운명을 들으러 가는 게 아니라, 일기예보를 들으러 가는 거예요. 내일 날씨가 흐릴 수도 있구나, 이렇게 풀이해줘야 하는데 이상하게 풀이하는 사람들도 참 많죠. 내가 불교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데,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과거에 집착해서 그렇고 불안한 이유는 미래를 걱정해서 그렇다잖아요. 이 남자한테 26년에 반성하는 기운이 들어오는데 어떻게 행동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후회되는 마음에 더 깽판을 칠 수도 있고, 잠깐 제정신으로 돌아와서 '그래 미안했다.' 하고 놓아주면서 순순히 이혼해 줄 수도 있고, 아가씨가 품어줘서 다시 합칠 수도 있는 거지. 그때 가서 뭘 반성할지는 지금 남편 본인도 모르지. 그리고 그건 나도 모르고 사주도 몰라. 아가씨 인생은 항상 현재 자기 마음에 달려있어요."
옛날에는 사주가 심리상담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 분의 사주풀이를 듣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니 머리로는 알면서도 바보같이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에 자꾸 이곳저곳을 찾아 헤맸다. 나를 도와주려고 좋은 말을 해주는 의사, 상담사, 역술가 등 많은 전문가들부터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행복을 빌어주는 가족과 친구들까지 참 많은 사람들을 애태웠다.
그들의 사랑을 전적으로 믿는다면 더 이상 어리석게 굴지 말고 나 자신을 더 믿자. 세상이 계속 나를 가장자리로 밀어내는데 거기서 '저 그럼 떨어져요? 날아요?'라고 엉뚱한 데 가서 묻지 말고 스스로 날아버리자. 훨훨. 내 인생은 내 거니깐.
사주대로 될지 안 될지는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사주를 본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었으니깐.
나는 내 인생을 사주대로 말고 나대로 되게끔 할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