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적인 6월의 시작
지난 사흘동안 글을 한 자도 쓰지 않았다. 엄마가 우연히 내 브런치를 발견했다는 걸 알고 난 뒤로 브런치에 솔직하게 내 마음을 토해내기 어려웠다. 나는 K-장녀 콤플렉스를 겪으면서 엄마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이 있다는 사실을 상담치료에서 알게 되었다.
꼭 엄마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냥 글을 쓰기가 싫었다. 진전 하나 없이 지지부진한 이혼 과정, 발목 잡힌 것 같은 현실, 여전히 제정신이 아닌 ex, 작년에 비해 더 깊어진 내 우울증. 이 모든 것들은 글쓰기에 도움이 하나도 안 됐다. 나를 제대로 마주 보며 글 쓰는 게 우울증 치료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것 같다는 게 최근의 생각이었다.
무기력에 회사 가는 것도 힘들었던 5월을 지나가며 적어도 그 시간이 끝날 때쯤에는 어떻게든 되겠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에 내 몸을 맡길 심산이었다. 마치 뇌 디톡스처럼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떠오르는 감정은 그대로 여과해서 보내주기. 정신줄 꽉 잡고 버티려고 애썼던 지난날들이었지만 5월을 보내주는 건 무의식에 부유하는 기분으로 해보자 싶었다. 그래서 5월 말에 다다라서는 아예 글쓰기를 놓아버렸다.
근데 운명 같은 타이밍처럼 악몽 같았던 5월의 끝자락에 마침내 단비가 내리듯 내심 기다리고 있던 좋은 소식이 들렸다. (이혼 관련 X)
아니 사실 감히 기대하지도 못했다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할 것이다. 더 이상 나락으로 처박힐 곳도 없을 것만 같아서 기쁜 소식을 기다리는 게 왠지 지금의 나한테는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홍길동으로 인해 피해의식이 생긴 걸 수도 있고 더 아프기 싫은 마음에 방어기제가 작용한 걸 수도 있다. 이미 한 달 동안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다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백 번 천 번 나쁜 상상을 시뮬레이션해 보며 실망하거나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아직 죽으라는 법은 없는 걸까.
돌이켜보면 지난 1년간 내게는 행복한 신혼 생활도 남편도 없었지만 '나' 자신은 여전히 있었다. 우울과 싸우는 지옥 같은 현실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했다. 그건 아마도 삶에 대한 의지였다. 나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기도 했다. 껍데기만 있는 가짜 결혼에서 도망치기 위해 일로 도피를 했고 몸을 축내며 야근을 밥먹듯이 한 결과를 약간 보상받은 기분이다.
오늘은 축하하는 의미로 아빠와 단둘이서 700m 정도 되는 산을 올랐다. 작년 여름, 영문도 모른 채 한국에 돌아와서 현실직시도 못하고 나사 빠진 애처럼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온 뒤로 거의 1년 만의 산행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살은 7킬로가 쪘고 몸상태는 아둔하기 짝이 없어서 왕년의 속도가 안 났다. 자주 쉬어줘야 했고 계속 갈증이 났다. 그래도 마음만큼은 너무 뿌듯하고 속으로는 내가 대견해 미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기쁜 마음으로 6월에는 다시 등산도 하고 러닝도 해야지 다짐했던 나와의 약속도 지켰다. 이제 작고 반짝이는 목걸이만 사러 백화점에 가면 된다. 이렇게 상처받아도 내 뿌리는 건재하다. 그러니 다시 꽃을 피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설레는 6월의 시작이다.
제가 이 와중에도 주저앉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응원의 마음으로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