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가 부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다.
아까 낮에 첫 사회생활 시절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다음 주에 내가 살던 나라로 출장을 가는데 반나절 정도 시간이 나니깐 만나자고 했다. 언어는 이제 많이 늘었냐고, 현지인 맛집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 사실 지난여름에도 출장 왔던 선배를 거기서 만났었다. 그때는 이미 남편이 이상해지고 난 뒤였다. 한국에 있는 엄마 아빠한테 아무런 티도 못 내고 혼자서 민달팽이처럼 맨몸으로 버티고 있을 때였다. 언어도 계절도 문화도 다 다른 낯선 외국에서 나는 아무도 없는 민달팽이였다. 남편 하나 믿고 간 외국에서 내게 제일 먼저 등 돌린 그였다.
이 상황을 도저히 엄마 아빠한테 말할 수는 없지만 역시 생각나는 사람도 엄마밖에 없었다.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보이스톡을 걸었더니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당신 친구 아들이 애를 낳았다는 이야기만 했다. 우리는 혼기가 살짝 지난 나이에 결혼해서 양가 부모님들이 손주를 너무 보고 싶어 하셨다. 혹시라도 남편이 딩크라고 말했던 게 진심일까 봐 우리 엄마도 시어머니도 나한테만 따로 애 하나는 꼭 낳으라고 했었다.
내 목소리를 듣기도 전에 "얘 들어봐, 엄마 친구가 할머니 됐는데 갓 태어난 애기가 얼마나 귀엽던지“ 신나서 얘기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엄마 잘못도 아닌데 나는 거기서 한 번 또 무너졌다. 무슨 애 같은 소리냐고. 내가 여기서 애를 왜 낳냐고. 직업도 가족도 없이 외국에서 혼자 독박육아 하란 거냐고.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부리고 씩씩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엄마 잘못은 아무것도 없는데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게 엄마였다. 남의 나라 길거리 한복판에 주저앉아서 펑펑 울었다. 목덜미를 내려쬐는 여름볕이 뜨거웠다. 눈물콧물에 아스팔트 열기까지 더해져서 정신이 혼미했다.
우리가 살던 외국의 신혼집은 투베드룸 아파트였다. 남편은 이혼을 통보한 뒤에 자연스레 다른 방에서 자면서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의 별거는 각방 쓰기로 시작됐다. 내가 눈치 보면서 남편 옆으로 가봤지만 싸늘한 목소리로 당장 니 방으로 꺼지라고 했다. 싸늘하다 못해 혐오까지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에 가서 어정쩡하게 누웠지만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밤새 고민해 봐도 모르겠지만 일단 남편의 마음을 돌려보기 위해 싹싹 빌었다. 어르고 달래고 애원했다.
나는 애초에 집순이가 아니라서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이미 그 나라 어학원을 등록해 놓은 상태였다. 영어권 국가에서 직장 다닌 경험이 있어서 영어는 꽤 자신 있었다. 그래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라에서 그 나라 언어를 기초반 떼는 노력 정도는 해야 더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학원을 다니면서 새 친구도 사귀고 연말쯤에는 현지에서 취업을 할 생각이었다.
남편의 출근 시간은 내 어학원 수업 시간보다 빨랐다. 매일밤 자기 전에 헤드폰을 끼고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어도 소용이 없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시아버지가 주셨던 멜라토닌을 먹어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퀭한 눈으로 생지옥을 맞이하는 아침이면 벌써 집은 고요했다. 남편 방문을 괜히 열어봤다. 급하게 출근한 남편의 흔적이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침대정리를 대신해 주고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옷가지를 챙겨 나와 빨래 바구니에 넣었다. 강아지는 아침부터 내 눈치만 봤다.
감옥 같은 집을 빠져나와 어학원으로 갔다. 슬픔에서 벗어나려고 남의 나라 말 배우기에 집중했다. 원래도 언어적 감각이 있는 편인데 온통 신경을 외국어 공부에만 쏟으니 실력이 쑥쑥 일취월장했다. 수험생도 아니면서 하루에 6시간씩 공부했더니 보름 만에 현지인들과 어설프지만 간단한 대화가 통하기 시작했다. 어학원이 끝나고 집에 오면 다시 지옥의 시작이었다. 가정부처럼 집 청소를 했다. 남편이 오늘은 나와 대화를 좀 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김치찌개를 끓였고 어떤 날은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를 했다. 남편은 여전히 나를 개무시했다. 2인분씩 해놓은 음식을 혼자 꾸역꾸역 이틀에 걸쳐서 다 먹어치워야 했다. 나 혹시 귀신이 된 걸까? 남편에게 나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하루가 천년처럼 느리게 지나갔다. 그때 우연히 전 직장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 주말 끼고 거기로 출장 간다고. 만나자고. 한 달 반 동안 유일했던 약속이었다. 어학원이 끝난 오후에 택시를 타고 선배를 만나러 나갔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선배가 묵고 있는 호텔 근처의 카페에서 만났다. 선배는 밥을 같이 먹고 싶어 했지만 내가 아무것도 소화시킬 수 없었다. 빵쪼가리만 먹어도 얹히기 일쑤였다. 그래서 냉방병 핑계를 대고 차만 마실 수 있을 것 같다고 둘러댔다. 선배는 깜짝 결혼 선물이라며 신혼부부에게 인기 많은 브랜드의 컵 세트를 내밀었다. 나랑 만나기로 약속한 날 퇴근길에 백화점 들러서 샀다고 했다. 한국에서부터 고이 가져온 마음씨가 고마웠지만, 가짜웃음을 지으며 그 선물을 받는 건 무척 고통스러웠다. 고마운 만큼 무기력해서 죽어버리고 싶었다. 선배는 내 얼굴이 왜 이렇게 핼쑥하고 뭐가 많이 났냐고 걱정했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 때문인지 얼굴이 확 뒤집어져서 뭐가 잔뜩 나있었다.
"외국이라서 그런지 물갈이하나 봐요."
"야 무슨 소리야. 너 전 세계 다 누벼도 멀쩡했잖아. 우리 같이 살 때도 너만 외국 체질이었어."
잊고 있었다. 영어권 국가에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걸 다 지켜본 선배였다는 걸. 우리는 같은 회사 숙소에 살면서 출근도 같이 하고 퇴근도 같이 하는 사이였다.
"아 사실 오빠가 코 고는 게 너무 심해서 잠을 못 잤어요. 잠을 푹 못 자니깐 리듬이 깨져서 그런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잘 때는 방을 따로 쓸까 봐요."
"그래, 결혼해도 각방 쓰는 부부가 생각보다 진짜 많대. 생각해 보면 그게 더 편할 것 같아. 내 공간은 따로 갖고 있는 게 아무래도 편하지. 잠을 푹 자야 스트레스도 없고 그럼 괜히 부딪혀서 부부싸움 할 일도 없어지는 거 아니야? 나는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나랑 같은 집에 살았던 선배는 나에 대해 잘 기억하고 있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남편의 코 고는 습관을 핑계로 거짓말을 쳤다. 선배는 그것 참 좋은 생각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넘어갔다.
그 무렵 남편은 자기 엄마에게 말했다. 걔랑 같은 집에 있는 거 진짜 싫은데 내가 왜 그 집에서 안 나가고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줄 아냐고. 먼저 집을 나가는 사람이 유책배우자라고. 그 말을 주워들은 나는 또 한 번 무너졌다. 내가 무엇 때문에 한 달 반을 그렇게 버티고 있었는지 그 이유조차 까먹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시어머니 손에 이끌려서 한국에 돌아왔다. 내가 먼저 그 집을 떠났으니 남편이 이겼고 내가 졌다. 남편은 여전히 자기가 피해자고 내가 유책배우자라고 말한다. 그래 그럼 그런가 보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나는 고작 내 정신줄 하나 온전히 잡고 버티기 어려웠다.
선배에게 적당히 거짓을 섞어서 답장을 보냈다.
"선배 사실 저 취업해서 한국 돌아왔어요. 지금 따로 살아요. 주말부부예요. 선배 출장 갔다 오면 서울에서 한 번 만나요. 새 명함 드릴게요."
"아 그래? 대박 짱 부럽다!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는 게 주말부부래!!"
나는 새로운 사실을 또 알게 되었다. 별거가 부럽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행복하다는 것을. 이놈의 남편이 맨날 귀찮게 하는 게 지긋지긋해서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 복 받았다는 것을.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사람들만 그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주말부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는 말은 나를 두 번 슬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