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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사랑한다고 눈물 흘린 그가 오늘 이혼을 고했다.

단지 내가 슬픈 건 남편도 남편 마음을 모르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by 은연주

내 글을 읽어주시는 많은 구독자분들이 여전히 이유를 궁금해한다. 도대체 왜 남편이 이혼을 하자고 하는지. 이 상황이 말이 되는지. 다른 숨겨진 이유는 더 없을지. 두 달 동안 매일같이 글을 쓰며 나의 곪아있던 감정들을 쏟아냈고 아직도 쏟는 중이다. 사건의 당사자인 나도 이 상황을 표면적으로 받아들이는데 반년이 넘게 걸렸다. (혹시 우연한 알고리즘으로 어쩌다 이 글까지 흘러들어오신 분들은 아래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https://brunch.co.kr/@eunyeonju/4

https://brunch.co.kr/brunchbook/murdered




가끔 남편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내가 3년간 만난 그는 대체로 별생각 없이 유쾌한 남자였다. 평일에는 퇴근하면 운동을 했고, 주말마다 서핑과 캠핑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아내들이 제일 싫어하는 남편의 취미 1위에 항상 낚시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남편도 당연히 그걸 알고 어떤 여자가 낚시를 좋아하겠냐며 결혼은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 어떤 여자가 바로 나였다.


나는 워낙 자연을 좋아했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부터 학원 대신 자연에서 흙 밟고 뛰노는 숲 캠프를 보냈다. 배춧잎에 붙어 나온 달팽이에게 상추를 먹이로 주면서 열심히 키웠다. 학교 앞에서 500원 주고 사온 병아리를 키워 닭까지 만들어 봤고, 올챙이를 잡아서 개구리로 변신하는 과정은 매년 봄마다 지켜봤다. 그래서 남편과 처음 캠핑에서 만났을 때, 남편이 낚시까지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꿈에 그리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남편을 만나기 한참 전인 2016년인가 17년도쯤 내 SNS에 낚시가 취미인 남자를 만나게 해 주세요!라는 소원을 적기도 했었다. 젊어서는 오도이촌 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은퇴를 하면 아예 시골에 내려가서 안빈낙도, 강호한정의 삶을 살고 싶었다.


우리는 평일에 퇴근하고 한강에서 만나 낚싯대를 펼쳐놓고 멍 때리며 흐르는 강물을 함께 바라보곤 했다. 출출하면 편의점에서 파는 라면을 먹었고, 찌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동안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들었다. 한강은 더러운 똥물인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2급수라는 사실과 한강에서 쏘가리도 잡히고 민물장어도 잡힌다는 사실은 남편을 만나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우리는 금요일이면 퇴근하자마자 전국구로 떠났다. 주말 내내 캠핑을 하고 갯바위에서 낚시를 했다. 둘 다 시골을 좋아해서 함께 안 가본 곳이 없다. 나는 남편 따라 간 양양에서 서핑을 처음 해봤고 내친김에 그에게 수영도 배웠다.




하지만 우리가 신혼집에서 동거를 하면서부터 남편은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물론 당장 결혼 준비를 멈추고 파혼을 외쳐야 될 수준으로 이상한 건 아니었다. 집에서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보게 된 남편의 새로운 면은 의외로 예민했고 매사 부정적이었다. 어느 포인트에 기분이 상한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화를 내기도 했다. 종종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기도 했다. 내 기분 말고도 시부모님이나 자기 동생 같은 원가족에 대해서도 그런 태도를 보였다. 궤변을 늘어놓고도 인정하지 않고 내로남불 그 자체일 때도 있었다.


남편이 싹수없는 인성파탄자는 아니었다. 내가 3년을 만났기 때문에 확실했다. 그의 부모님을 봐도 그건 절대 정말 아니었다. 남편은 상처를 받기 싫어서 먼저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불안도가 굉장히 높아 보였다. 타고나길 예민한 성향 때문에 항상 불면증에 시달렸고, 나와 같이 살게 되니 편안해지면서 본모습(스트레스)이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순수한 면이 있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 보여서 고통스러워 보일 때도 있었고, 가끔 일차원적인 아이 같아 보일 때도 있었다. 같이 사니깐 더 알다가도 모르겠는 사람이었다. (사건이 터진 후에 혹시 남편이 다중인격이나 조현성 성격장애가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시댁에서 남편의 군대 시절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자기만의 이상한 공상 세계가 체계적이고 확실하게 있었다. 보통의 일반적인 상상과는 확연히 달랐다. 심지어 남편은 평소에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또 촉각과 청각, 후각 같은 감각기관이 상상 이상으로 예민했다. 나는 그저 둔해서 그런 남편을 보며 '와 자기 음악 했으면 천재 작곡가 됐겠다, 요리했으면 천재 셰프 됐겠다~' 할 뿐이었다.




그래서 안쓰러웠다. 연애때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남편이 싫어진 게 아니라 오히려 짠하게 느껴졌다. 남편이 그토록 자연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 눈에는 자연으로 도망쳐서 지친 마음을 달래는 것 같아 보였다. 어쩌면 장남의 무게가 느껴졌다. 아버지를 향한 억울함이나 이해받지 못한다는 소외감이 보였다. 그가 따로 말한 적은 없지만 왠지 알 것 같았다. 같이 살아보니 그의 이런 모습이 걱정이라고 우리 엄마 아빠에게 말한 적이 있다. 부모님은 네가 사랑으로 잘 보듬어주라고 말씀하셨다. 그래, 나는 애초에 완벽한 남자를 찾지 않았다. 그가 완전해서 사랑한 게 아니었다.


그를 사랑하면서부터, 이왕 결혼하기로 한 이상 어떻게든 같이 잘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마음을 쓸수록 그는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아파서 그래. 남편의 마음이 많이 아파서 그런 거야.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이혼하자는 말을 꺼냈을 거야. 어떻게든 이해해보고 싶어도 그는 대답이 없다. 그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눈물 흘린 다음날 배신감에 사랑이 식었다며 이혼을 하자고 했다.


남편은 아마 지금도 자기 마음을 모를 것이다. 오빠, 진짜 나를 사랑하기는 했니? 그게 사랑이니? 진심으로 따져 물어도 남편은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서, 정말 몰라서 대답을 못할 것이다. 우리가 8개월째 별거하는 동안 그가 스스로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져봤을까. 아니. 그는 지금도 많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게 나를 너무 허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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