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지금 별거하며 이혼 준비 중인데요? 나중일은 나중에 생각하죠 뭐!
결혼을 준비하며 많이 의지했던 웨딩 플래너에게 연락이 왔다. 그곳에서 행복한 신혼 생활 잘 보내고 계시냐고,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는 얘기와 함께. 웨딩 잡지에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내 사진을 싣고 싶다고 하셨다.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눈앞이 캄캄해졌다.
우리의 결혼식 준비는 바야흐로 코로나 시대가 끝나고 그동안 미뤄졌던 결혼식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식장 잡는 것부터 전쟁이던 시절이었다. 우리에게 결혼식은 부모님을 위한 행사일 뿐이었다. 남편 입장에서는 내가 결혼식에 굉장히 신경 쓴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저 어쩔 수 없이 총대를 메었을 뿐이다. 그도 그럴게 모든 업체에서 다 나한테만 연락을 하면서 "신부님~ 신부님~"하는데, 거기다 대고 "왜 저한테만 연락하세요? 저 말고 신랑한테 연락하세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남편이 정말 뭘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브라이덜 샤워 같은 것도 관심이 없었고, 평소에 구두를 신지 않아서 웨딩슈즈도 필요 없었다. ‘특별한 나만의 결혼식! 인생 한 번뿐인 이벤트!’ 이런 바람 들어간 로망 따위는 전혀 없었다. 신혼여행만이 나의 유일한 도파민이었다. 어차피 인생 한 번뿐인 이벤트라기엔 초등학교 졸업식도 인생에 한 번뿐인 걸? 심지어 초등학교를 두 번 졸업할 일은 사실상 없지만, 결혼식은 이혼하고 재혼하면 인생에 두 번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애초에 우리는 부모님들을 위한 결혼식이었고, 어른 손님들이 더 많이 올 예정이라서 최대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우리가 준비하는 종류의 결혼식을 주로 맡는 웨딩 플래너 업체 대표님을 소개받았고, 어쩌다 보니 그분께서 직접 우리 결혼 준비를 맡아주셨다. 업계 1인자답게 내 플래너는 매우 프로페셔널했고, 단순히 고객 시점이 아니라 커리어우먼의 시점으로 일은 저렇게 하는 거구나 싶을 만큼 일처리가 완벽했다. 대표의 파워가 이런 걸까. 그녀의 말 한마디면 안 되는 게 없었다. 사전 준비도 없이 얼레벌레 가서 받은 상담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모든 업체 예약이 척척 끝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1년 전부터 마감된 초인기 업체들이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업체 예약만 도와주는 게 아니라 서로의 부모님께 예를 갖추는 법, 양가가 서로 화합하는 과정의 의사소통, 전통 예단의 의미 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며 매 순간 도움이 필요할 때 해결사처럼 나타났다. 결혼식 당일에도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현장을 다 지켜보고 지휘하고 가셨다. 우리 결혼식은 1, 2부에 리셉션까지 추가된 긴 결혼식이라서 장장 4시간이었다. 그런데도 내 플래너는 양가 부모님이 먼저 떠날 때까지 내 곁을 지키며 마무리를 도와주셨다. 나중에 주변 기혼들에게 듣기론 아무리 업체 대표여도 절대 그렇게 못한다고, 네가 정말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인가 보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인복 하나는 타고난 것 같았다.
그분에게 결혼식 외에도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해외 이사와 결혼 준비가 겹쳐서 힘들었을 때 내가 남편보다도 더 많이 의지를 했던 왕언니 같은 분이었다. 결혼 선배로서, 수많은 결혼을 준비한 20년 경력자로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모든 신부들에게 똑같은 뻔한 레퍼토리의 고루한 이야기가 아니라, 진심이 담긴 카운슬링받는 기분이었다. 결혼 준비가 막바지로 치달을 때 나와 내 플래너는 서로 허심탄회하게 속마음까지 편히 이야기하는 사이였다.
결혼 한 달 전, 불안도가 높아진 남편을 보며 나도 힘들어할 때, 으레 남들의 메리지 블루처럼 "에이 다 금방 지나가요, 신부님~"이라며 쉽게 넘기지 않았다. 대신 인생 길다고, 결혼 생활은 현실이라고, 결혼 준비 과정은 성숙해지는 성장통이라고, 연주 신부님은 자신의 행복을 우선하라고 말해주는 플래너였다. 만약 그때 우주의 기운으로 미래를 예견해서 파혼했다면, 플래너는 수입이 0원일 텐데도 진심으로 그렇게 말해줬다.
- 잡지 인터뷰에 연주 신부님 사진을 싣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너무 예쁘게 나와서요.
- 아 제가 부끄러움이 너무 많아서... 좋은 기회 제안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사진은 다른 신부님께 양보할게요!
- 이 정도 사이즈로 들어가고, (잡지 사진을 보내줬는데 실제로 정말 작았다.) 아무래도 배경 위주 사진이라서 연주 신부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아요. (그러면서 그녀가 미리 고른 적당한 사진을 샘플로 보여줬다.)
이렇게 갑자기 무방비 상태로 마주한 내 결혼식 사진. 그날의 나는 정말 예뻤고 꽃장식은 다시 봐도 더 환상적이었다. 이제 뭐라고 둘러대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사실 이미 우리 결혼사진은 리허설 촬영 스튜디오 공식 SNS에 올라갔고, 본식 스냅 업체 SNS에도 다 올라갔다. 그걸 다시 내려달라고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도 없어서 그냥 외면하고 있었는데. 벌써 공개된 사진들이 버젓이 있는데, 갑자기 이제 와서 싫다고 거절할 핑계가 마땅치 않았다.
- 혹시 그럼 제 이름 같은 신상도 들어가나요? 결혼식 이후에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워서 저 인스타그램도 없앴거든요.
- 네, 이름 같은 건 전혀 안 들어가요. 저희 업체 인터뷰고 레퍼런스 이미지컷이 들어가는 거예요. 배경 위주의 연주 신부님만 작게 나온 컷이요.
- 네 그럼 괜찮을 것 같아요. 영광이네요! 대표님 덕분에 잡지에도 다 실리고 하하.
- 잡지 나오면 제가 보내드릴게요. 기념으로!
최선을 다해서 티 나지 않게 잘 방어한 것 같다. 반년만에 연락온 플래너에게 ‘저 이혼하니깐 앞으로 연락하지 마세요’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자 이번에는 잠깐 신랑 없이 신부님만 독사진 찍을게요~" 신부 독사진은 결혼식 때 정말 많이 찍는 필수컷인데, 나는 진짜로 신랑이 없어서 우습다. 나중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사진은 사진일 뿐이니깐. 고작 사진 한 장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 없다. 결혼이 뭐 어때서. 별거가 어떻고 이혼은 또 어때서. 쓸데없이 스트레스받으며 전전긍긍하기 싫다. 어쨌든 덕분에 이렇게 내 결혼사진은 곧 웨딩 잡지에 실릴 예정이다. 그래 솔직히 진짜 예쁜 결혼식이긴 했지, 조금 뿌듯함도 느끼는 내가 너무 웃기다.
아직 내 결혼식 사진은 여태껏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지만, 대신 브런치북 표지 사진으로 썼다. 두 권의 브런치북 표지가 실제 내 결혼사진이다.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결국 이렇게라도 쓸모를 찾으려고 결혼식을 한 건가 싶다. 훗날 내 글들이 정말 책으로 출판된다면 그때도 꼭 내 결혼식 사진을 표지로 써야지.